[단독] 서류없어 못쓰는 해외 원전부품 1000억원 넘는다

입력 2019-09-25 11:39
수정 2019-09-25 11:41

한국수력원자력이 해외업체로부터 품질증빙 서류를 제대로 받지 못해 원전 부품 1022억원어치를 창고에 쌓아두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25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김규환 자유한국당 의원실이 한수원으로부터 제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한수원의 자료보완요구서(DNN)는 총 323건으로, 금액으로는 약 1022억원 수준인 것으로 집계됐다.

한수원은 해외업체에서 자재를 구매해 선적한 뒤 국내로 들어와 인수 검사를 진행한다. 이때 품질증빙 서류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으면 DDN을 발행한다. 서류 보완이 완료되기 전까지는 자재를 사용하지 못한다.

한수원이 발행한 DDN의 70% 이상은 발행일로부터 5개월 이상 경과해 장기 미결 상태다. 2014년에 발행한 DDN 4건(약 1억8700만원 어치)도 서류 보완이 이뤄지지 않았다. 총 323건 중 11건(약 13억원어치)은 해당 업체에서 회신조차 받지 못했다고 한다.

월성원자력본부는 2016년 프랑스 에너토피아로부터 약 4700만원에 베어링을 구매한 뒤 품질증빙 서류 미흡으로 해당 자재를 사용하지 못하고 있지만 해당 업체는 회신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도 월성본부는 2017년부터 올해까지 매년 이 회사로부터 계전기, 슬리브 등 자재를 구입했다. 이 거래들 역시 마찬가지로 품질증빙 서류가 미흡해 DDN을 발행했으나 미회신 상태다.

‘불량서류’ 사태가 반복되는 이유는 해외업체로부터 자재를 구매할 때 인수검사 전에 대금 지급을 완료하기 때문이다. 인수검사 때 품질서류 미흡으로 불합격돼도 납품업체의 적극적 서류 보완을 기대하기 힘들다. 한수원 관계자는 “자재 자체에 결함이 있는 것이 아니라 서류상 미흡한 점이 있어 보완이 이뤄지는 과정에 있는 것”이라며 “해외 인력 사정, 국제 거래 관례 등을 고려했을 때 품질증빙 서류 전부를 대금을 치르기 전에 미리 수령해 검토하는 건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한수원 자체 감사에서도 이런 문제가 지적됐다. 지난해 12월 한수원 상임감사위원은 한빛원자력본부 종합감사 처분요구서를 통해 “해외 구매자재의 경우 대금이 인수 전에 지급되기 때문에 납품업체의 적극적인 서류 보완을 기대하기 힘들고, 정비부서에선 보완이 완료될 때까지 자재를 사용하지 못해 회계장부상 미정산 상태로 남게 된다”며 “DDN이 발행된 원전 자재에 대한 처리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적했다.

한수원은 DDN 발행 후 서류 보완을 하지 않은 업체에 대해선 차기 입찰에서 점수를 삭감하는 등 보완책을 마련 중이다.

구은서/임도원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