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시대착오' 낡은 규제, 실태 조사해 전면 폐기해야

입력 2019-09-24 17:47
수정 2019-09-25 00:23
시대 흐름에 역행하는 규제가 또 생겨날 모양이다. 청와대와 정부·여당이 끝내 복합쇼핑몰에도 대형마트 수준의 영업 제한을 가하기로 한 것이다. 도입 방법도 편법에 가깝다. 문재인 정부 ‘100대 국정과제’의 하나인 복합몰 규제를 위해 유통산업발전법을 개정하려다 야당 반대에 막히자, 하위법령인 국토교통부 훈령을 고치겠다는 식이다. 그대로 관철되면 복합몰은 월 2회 강제휴무, 야간영업 제한에다 신규 출점도 어렵게 된다.

복합몰 규제가 시대착오인 것은 소비패턴이 확 달라졌기 때문이다. ‘몰캉스’ ‘몰세권’ 같은 신조어에서 보듯, 한 곳에서 쇼핑하고 먹고 놀고 즐기는 소비문화가 깊숙이 자리잡았다. 이런 복합몰을 대형마트처럼 규제한다면 소비자 불편·불만과 입주상인들의 피해만 초래할 것이다. 방향을 잡아도 한참 잘못 잡았다.

7년째 지속된 대형마트 규제도 실익은 없이 소비만 위축시킨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대형마트 백화점 등 오프라인 매출을 다 합쳐도 온라인 매출에 못 미칠 만큼 유통시장 판도는 완전히 뒤집어졌다. 대형마트들이 규제 이후 7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이고, 최근에는 적자를 낸 곳도 있다. 그렇다고 전통시장이 활성화된 것도 아니다. 무엇을 위한 규제인지 알 수 없다.

낡은 규제는 유통 분야만이 아니다. 과거 만성 자금부족기에 도입한 은산분리(산업자본의 은행 소유 제한)가, 지금처럼 돈이 넘치는데도 존속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재벌의 사금고화’를 막는다지만 오히려 요즘은 은행들이 대기업에 돈을 써달라고 호소할 정도다. 경제환경이 상전벽해인데 이런 규제를 복음처럼 여기니, 은행들의 독과점이 심화되고 핀테크 활성화만 저해한다는 비판을 자초하고 있다.

1987년 도입된 대기업집단 지정제 역시 난센스에 가깝다. 세계가 단일시장이 돼 가고, 기업 간 합종연횡이 활발하며, 과잉투자가 아니라 투자 부족을 걱정하는 판국에 출자제한 등 규제를 가하는 게 합리적인가. 자산 10조원 이상이면 대기업집단으로 지정돼 수십 건의 규제를 받는데, 세계에서 이 정도 규모는 구멍가게 수준이나 다름없다. 한국 대기업은 규제받고 다국적 기업 국내지사는 중소기업으로 간주되는 웃지 못할 풍경도 벌어진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다양한 근무형태를 전혀 반영하지 못한 획일적 주 52시간 근로제, 기술과 영업 노하우를 부정하는 SI(시스템 통합) 업체의 일감 몰아주기 규제 등도 변화에 역행하고 있다. 시대착오적 규제가 자꾸 나오는 것은 규제 생산자인 정치인과 관료들이 변화에 무지하거나, 오도된 이념에 갇혀 있거나, 규제가 누군가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미국 일본 유럽은 물론 중국조차 4차 산업혁명의 대전환기에 맞춰 규제방식을 스마트하게 전환하고 있는데, 한국만 되레 역주행이다. 기업활동을 잠재적 범죄로 여기는 ‘사전 규제’에서 탈피해, 자유롭게 허용하되 불법 행위는 ‘사후 엄벌’하는 것으로도 규제 목적은 충분히 달성할 수 있다. 시대착오적 규제를 전면 폐기하지 않고선 산업도, 내수도 살릴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