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국에 대한 수출규제로 한·일 관계가 급속도로 악화됐지만 양국 기업인은 다양한 사업 분야에서 협력 관계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글로벌 분업 체제 속에 두 나라 기업 간 공급망 유지가 중요한 데다 냉랭해진 양국 정부가 대화의 물꼬를 트려면 민간 영역에서라도 창구를 열어놓아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24일 개막한 한일경제인회의 이후로도 양국 기업인의 만남은 이어진다. 한·일 민간 경제외교의 주요 채널 역할을 하고 있는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와 일본경제단체연합회인 게이단렌은 11월 14~15일 일본 도쿄에서 ‘한일재계회의’를 연다. 두 단체는 1983년부터 이 회의를 지속하고 있다.
양국 관계 악화로 2007년 회의 이후 7년이나 중단되기도 했다. 2012년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 등으로 한·일 관계가 급격하게 나빠지면서다.
얼어붙은 양국 관계에 해빙 무드를 마련한 인물은 허창수 전경련 회장이었다. 허 회장은 2014년 도쿄를 찾아 사카키바라 사다유키 당시 게이단렌 회장을 만나 회의를 재개하자고 설득했고, 그해 7년 만에 회의가 다시 열렸다. 이후 전경련과 게이단렌은 “정치는 뜨거워도 경제는 차갑게”를 모토로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전경련 등에 따르면 올해 한일재계회의에서는 참석자들이 양국 관계 개선을 위한 기업 간 협력의 필요성을 강조할 것으로 알려졌다. 내년 도쿄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위한 기업 차원의 협력 프로그램도 모색한다.
한국과 일본 기업이 공동으로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지역에 진출하는 방안도 고민한다. 엄치성 전경련 국제협력실장은 “중국과 미국이 보호무역주의 기조로 돌아선 가운데 한국과 일본 기업이 힘을 모아 자유무역 체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논의가 오갈 것”이라고 말했다.
개별 기업 차원에서도 소통의 물꼬를 트기 위해 적극 나서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 20일 럭비 월드컵 조직위원장인 미타라이 후지오 캐논 회장의 초청을 받아 도쿄에서 개막한 ‘2019 일본 럭비 월드컵’ 개회식과 개막전을 참관했다. 이 부회장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 등 세계 정상들과 함께 럭비 경기를 관람했다.
경제계에서는 미타라이 회장이 아베 총리가 참석하는 공식 행사에 이 부회장을 초청하면서 한·일 관계 개선의 ‘신호탄’이 되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