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중반 필자가 브라질에서 근무하던 시절, 브라질 친구와 이야기하던 도중에 손으로 오케이(OK) 사인을 한 적이 있다. 그러자 그 친구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분위기도 갑자기 썰렁해지고 침묵이 흘렀다. 어색한 순간이 지난 뒤 친구가 설명해줬다. OK 사인이 브라질에서는 ‘엿 먹어라’ 정도의 심한 욕이라고. 브라질에서 OK 사인이 미국과 영국에서 중지를 치켜세우는 것과 같다는 것을 안 순간, 필자는 얼마나 당황했는지 모른다. 진심으로 사과한 후에야 대화가 다시 정상적으로 이뤄졌다.
원래 OK 사인은 미국 남북전쟁 당시 병사가 상관에게 ‘사망자 없음’을 보고할 때 사용한 동작에서 유래했다. 대부분 나라에서 ‘문제없다’ 또는 ‘좋다’는 뜻으로 사용되는 몸짓이 브라질, 러시아, 터키에서는 성적인 모욕감이나 적대감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을 알고 국가 간 문화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를 또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1993년 호주를 방문했을 때 당시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환호하는 호주인들에게 감사의 뜻으로 손가락을 들어 브이(V) 사인을 해보였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호주 신문에 “부시 대통령이 호주인을 모욕하다”라는 큼지막한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부시 대통령이 V 사인을 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손등을 상대방에게 보인 것이 문제였다.
손등 보이는 V사인, 영국선 '모욕'
영국, 호주에서는 손등을 상대방에게 보이는 V 표시는 ‘뒤집은 평화(reverse peace)’라고 해서 ‘빌어먹을’ ‘뒈져라’ 등 상대방을 모욕하는 표현에 해당한다. 기원은 15세기 북부 프랑스의 노르만과 잉글랜드 간 전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노르만인들은 잉글랜드인들이 패퇴하면 다시는 전쟁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영국 궁수들의 활 쏘는 손가락을 잘라버리겠다고 위협했다. 그러나 전쟁에서 승리한 것은 잉글랜드인. 그들은 노르만인에게 두 손가락을 손등이 보이게 치켜세워 보임으로써 승리를 자축하고 노르만인들에게 말할 수 없는 모욕감을 안겨줬다.
위의 두 사례는 상대방의 문화를 몰라 저지른 실수다. ‘문화 간 접촉’을 직업으로 하는 외교관들도 현지 몸짓 언어를 몰라 실수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물며 일반인이야. 한국인들이 해외에서 저지르기 쉬운 실수를 두 가지만 살펴보기로 하자.
한국, 일본, 동남아시아 등 동양 문화권에서는 대화할 때 상대방 눈을 빤히 쳐다보는 것을 결례라고 생각한다. 특히 연장자와 이야기할 때 그렇다. 그러나 서구와 중동에서는 대화할 때 상대방의 눈을 마주보고 이야기한다. 이곳 사람들은 상대방이 눈길을 피하면 자신을 무시하거나 속이고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필자는 ‘눈에 힘주는 후레자식’이 되지 않으려고 ‘눈을 내리까는’ 한국인을 자주 봤다.
또 한 가지는 집게손가락의 사용이다. 서구에서나 동양에서나 물건을 가리킬 때 집게손가락을 사용한다. 사람을 지명하거나 인원수를 셀 때도 검지를 쓴다. 하지만 서양에서는 집게손가락으로 사람을 가리키면 안 된다. 모욕, 비난, 꾸짖음을 의미하는 동작이기 때문이다. 옛날부터 유럽에서는 검지에 독이 있어 연고를 바를 때 검지를 사용하면 안 된다는 미신이 있었다. 또 사람을 향한 검지는 무기를 뜻해 싸움도 불사하겠다는 결의의 표시로 여겼다.
인류는 삶과 역사를 통해 몸짓 언어를 발전시켜왔다. 전문가에 의하면 인류는 70만 개나 되는 상이한 몸짓 언어를 구사할 수 있다. 25만 개나 되는 얼굴 표정과 5000개나 되는 손짓 언어도 있다. 몸짓 언어는 감정을 표현하는 적극적인 언어다. 때로는 말보다 더 강력한 효과를 발휘한다.
한 미국 청년이 나이지리아에서 차를 얻어 타기 위해 히치하이크를 하고 있었다. 현지인을 가득 태운 차량이 지나다가 갑자기 멈췄다. 그들은 차에서 내려 미국 청년을 때리기 시작했다. 왜 그랬을까? 히치하이크를 위해 미국에서 사용하는 ‘엄지 세우기’가 나이지리아에서는 모욕적인 신호였기 때문이다.
불필요한 긴장 줄여주는 소통 수단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이 미국을 국빈 방문했을 때의 이야기다. 식사 중 그는 통역에게 물었다. “미국에서는 여자가 자신의 발을 남자의 발 위에 놓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나요? 러시아에서는 여자가 그 남자를 사랑한다는 뜻입니다.” 바로 옆에 앉아 있던 바버라 부시 여사가 옐친의 발을 밟았던 것. 얼마 후 옐친은 아래 메모를 부시 여사에게 건넸다. “내 발을 밟으셨군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시죠. 나도 똑같은 감정을 느꼈어요.”
국경과 문화와 언어의 경계를 넘나드는 글로벌 시대에 우리는 소통을 위해 외국어를 공부한다. 그러나 외국어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몸짓 언어에 대한 이해가 동반될 때 소통은 촉진된다. 불필요한 오해와 긴장을 해소할 수 있다. 몸짓 언어는 고유의 역사적 배경과 문화적 전통에 따라 발달해왔다. 몸짓 언어의 이해는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박희권 < 글로벌리스트·한국외국어대 석좌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