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재길의 경제산책] 유류세 환원 뒤 국제유가 급등…난감한 정부

입력 2019-09-23 10:32
수정 2019-09-23 13:23

한국은행은 드물지만 ‘흑(黑)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2008년 글로벌 중앙은행들이 경기 하강을 예상하고 일제히 기준금리를 낮췄을 때 한은만 같은해 8월 ‘나홀로’ 금리를 올렸지요. 9월에 리먼브라더스 사태마저 터지자 한은은 10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총 5차례에 걸쳐 금리를 낮춰야 했습니다. 유례없이 빠른 속도였지요. 한은 금융통화위원회의 ‘실력’에 의문이 생겼습니다.

한은은 2017년 11월과 작년 11월에도 금리를 올렸습니다. ‘우리 경제의 정점이 2017년 9월이었다’(통계청)는 공식 진단이 최근 나오자, 한은의 금리 인상이 모두 경기 하강기에 진행됐다는 점이 확인돼 비판을 받고 있지요. 경기 둔화 땐 금리를 낮춰 투자와 소비를 진작하는 게 기본인데, 부동산 잡기에만 몰두하면서 엉뚱한 처방을 내놓았다는 겁니다.

한은보다 정부의 헛발질에 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유류세 인하입니다.

정부는 작년 10월 관계장관회의를 열어 ‘유류세 15% 인하’ 결정을 내렸지요. “유가 상승과 내수 부진으로 어려움을 겪는 서민을 지원하겠다”는 취지였습니다. 정부가 기름값에 붙는 세금을 한시적이나마 깎아주는 조치를 내놓은 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10년 만이었습니다.

그런데 타이밍이 좋지 않았습니다. 유류세를 실제 인하한 작년 11월6일은 국제유가가 이미 정점(서부텍사스유 기준 배럴당 76.41원, 10월3일)을 지나 하락하던 때였지요. 국제유가는 같은해 12월24일엔 배럴당 42.53원까지 떨어졌습니다. 이후에도 유가는 배럴당 50달러 선으로 안정세를 띄었구요.

문제는 유류세 인하가 종료된 지난달 말 이후입니다. 국제유가가 갑자기 치솟기 시작했습니다. 설상가상 사우디아라비아 원유 정제시설이 피격되면서 배럴당 70달러를 돌파했지요.

국제유가 급등이 국내 기름값에 미치는 영향은 다음달 초부터 본격화할 것으로 보입니다. 국제유가 상승분이 보통 2~3주 뒤부터 주유소 판매가격에 반영되기 때문이죠. 전국 주유소의 보통 휘발유 가격은 이미 L당 평균 1500~1600원으로 뛴 상태입니다.

또 경기 하강에 따른 소비 침체 기조는 작년 말보다 지금이 더 심각한 상황입니다.

국제유가 상승에다 유류세 환원 조치까지 겹치면서, 내수 침체가 가속화할 것이란 우려가 나옵니다. 법인세 양도소득세 부가가치세 등 세수가 꺾인 상황에서 또 다시 ‘유류세 인하’ 카드를 꺼내들기도 어렵지요.

과거 한은의 ‘거꾸로 금리 인상’ 때처럼, 정부가 운이 없거나 실력이 부족하다는 말을 들어도 할 말이 없게 됐습니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