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으로 투자이민을 떠나려는 30~40대가 늘고 있다. 국내 정치·경제 상황이 불확실한 가운데 미 정부가 투자이민에 필요한 투자금 기준을 상향할 움직임을 보이자 관심이 급증했다.
지난 21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인터컨티넨탈호텔 젤코바룸. 오후 1시가 되자 40석 규모의 방은 빈 자리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이민알선업체인 A사가 연 미국 투자이민 세미나에 참석하고자 주말을 반납한 사람들이다. 과거 투자이민 설명회는 5060이 주류를 이뤘지만 이날 행사에는 30대 신혼부부부터 머리가 희끗한 70대까지 참석자들의 연령대가 다양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한두 달에 한 번씩 열던 세미나를 이달 들어선 2주마다 개최하고 있다”며 “젊은 층의 관심이 증가하면서 투자이민 문의도 평소보다 두 배 이상 늘었다”고 말했다.
“투자 이민 막차 타자” 몰리는 사람들
미국으로 투자이민을 하려는 사람들에겐 이달이 사실상 마지노선이다. 오는 11월 21일부터 개정된 미국 투자이민 규정이 시행되면 투자이민 문턱은 더 높아진다. 투자이민 때 필요한 투자금은 고용촉진지구(TEA)에선 50만달러에서 90만달러로, 비고용촉진지구(non-TEA)에선 90만달러에서 180만달러로 두 배가량 오른다. 투자 지역을 선별하는 기준도 엄격해져 투자금 손실 부담이 상대적으로 작은 TEA지역은 대도시가 아닌 지방으로 국한된다. 이민업계 관계자는 “9월 말까지 서류를 준비하고 10월 중순까지는 투자금이 마련돼야 한다”며 “시일을 넘겨서 대도시에 투자하는 경우 50만달러가 아니라 180만달러를 구비해 놓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준비시간이 촉박하지만 이날 세미나에 참석한 사람들은 이를 아랑곳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김모씨(51)는 “이미 다른 투자이민 설명회 세 곳에 참석해 투자 정보를 모았다”며 “먼저 미국으로 이민 간 이웃에게 조언을 구하면서 어떤 투자 프로그램을 선택할지 고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이민국에 따르면 한국에서 미국으로 투자이민비자(EB-5)를 발급받은 건수는 2015년 116건에서 지난해 531건으로 크게 늘었다.
3040은 자녀 교육이 문제
6억원이 넘는 돈을 쓰면서 미국으로 가려는 사람들은 한국의 정치·경제 상황에 대한 우려를 쏟아냈다.
제조업체를 운영하는 유모씨(54)는 “한국에 사는 게 무서워 이민 가려 한다”며 “국내 산업이 새로운 먹거리를 못 찾았는데 세 부담은 여전하고 정치, 안보도 혼란스러운 게 우리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고등학교 1·3학년생 자녀를 둔 노모씨(47)의 고민은 자녀의 미래 일자리였다. 그는 “한국에서 자란 자녀들이 만족할 만한 일자리와 교육 기회를 얻게 될지 모르겠다”며 “영어권 국가로 떠나 자녀들을 그곳 대학에 보낼 생각”이라고 전했다.
부인과 함께 세미나를 찾은 김모씨(33)는 “젊은 나이에 사회생활을 하려면 경기 전망이 밝은 곳에서 시작하는 게 맞다고 본다”며 “한국 상황이 장기적으로 봤을 때 경기나 과세 측면에서 나아지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민업계 관계자는 “고령층에선 상속세나 증여세 부담을 줄이고 쾌적한 삶을 누리기 위해 미국 이민을 가지만 30~40대는 자녀 교육이 이슈”라며 “조국 법무부 장관의 딸 대학 입학 과정에서 특혜 논란이 일어난 뒤 젊은 층의 이민 문의가 늘었다”고 전했다.
이주현 기자 de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