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2003년 노무현 대통령에 직언 "국민의 소리 직접 들어라"

입력 2019-09-22 08:40


가족이 검찰의 조사를 받고 있는 조국 법무부 장관이 2003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행보를 떠올리게 하는 검사와의 대화에 직접 나서며 검찰개혁 발걸음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조 장관은 20일 첫 방문 검찰청으로 경기 의정부지검을 골랐다. 검찰개혁의 핵심 타깃인 특수부가 없고 지난해 강원랜드 수사 외압 의혹을 폭로했던 안미현 검사가 근무하는 곳이라는 점이 고려된 것으로 풀이된다.

조 장관은 “검찰 개혁을 위해서는 누구보다도 일선 현장에서 묵묵히 일하는 검사와 직원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자리가 마련된 이유를 설명했다.

점심 식사를 겸해 진행된 검사와의 대화 종료 후 조 장관은 “검찰 개혁 문제든 검사분들의 애로사항이든 허심탄회하게 모든 것을 들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일가족 수사에 대한 얘기가 나왔느냐는 질문에는 “뭐 살짝 나왔습니다”라며 즉답을 피했다.




언론에 따르면 일부 검사는 조 장관 앞에서 “일이 많은데 이런 자리까지 동원해야 하느냐”는 불만도 내비친 것으로 전해졌다.

조 장관의 대학 동기인 임무영 서울고검 검사는 같은 날 검찰 내부망에 “조 장관이 사전 각본 있는 행사에 검사들을 동원한다”는 취지의 글을 올렸다. 임 검사는 “왜 하필 ‘지금’ 하느냐는 의문이 든다”며 “일시, 장소, 내용이 모두 공개되지 않고, 사전 각본도 있는데 도대체 그런걸 뭐하러 하는지, 추구하는 바가 뭔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병역 회피 논란 끝에 국내 입국이 거부된 가수 유승준에 비교해 "지금 신임 장관이 검찰개혁을 부르짖는 것은 마치 유승준이 국민 상대로 군대가라고 독려하는 모습 같다"고 저격했다.

이런 가운데 조 장관이 서울대 법대 교수를 지내던 2003년 신임 대통령인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8가지를 주의하라고 고언을 올린 한 언론사 시론이 재조명되고 있다.



조 장관은 당시 중앙일보에 "대통령이 자신의 가족, 측근, 정부와 집권당의 중요 인사 등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 집권 초기의 뜻과 계획은 사그라지고 만다"면서 이러한 실패는 대통령 개인의 실패일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진보의 좌절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조 장관은 한비자(韓非子)가 군주에게 악이 되는 여덟가지 장애로 열거한 '팔간'(八姦)의 문언을 고스란히 노 전 대통령에게 전하면서 "잠자리를 같이 하는 자를 경계하라. 향후 각계각층의 이익집단들은 영부인.자녀.며느리.사위 등의 친인척에게 온갖 연고를 동원해 다면적.단계별 로비를 전개할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이어 "대통령과 국민 사이에 대화 통로가 막혀 있음을 이용해 국민의 소리를 전달한다는 미명 아래 유창한 변설(辨說)을 구사하며 자신의 이익을 관철시키려는 사람을 멀리해야 한다"면서 "'참여 정부'의 이름에 걸맞도록 국민의 소리를 직접 듣고, 국민의 참여를 북돋워야 한다"고 말했다.

조 장관은 "취임 초기에 곰팡내 나는 옛 글을 빌려 쓴소리를 드리게 된 것은 대통령이 처한 상황이 엄중하기 때문이다"라며 "임기 말에 이러한 저의 글월이 공연한 기우에 불과했음을 입증해 달라. 그때까지 시민사회운동은 바깥에서 감시와 비판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라고 글을 맺었다.

한편 사모펀드 의혹의 핵심으로 지목받고 있는 조 장관의 5촌 조카 조모 씨가 구속된 이후, 조 장관의 부인 정 교수의 검찰 소환도 임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나 한경닷컴 기자 help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