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성이 취약한 경제 더 악화시켜…L자형 장기침체 진입 가능성"

입력 2019-09-20 17:36
수정 2019-09-21 01:40

지난해 5월 때아닌 경기 침체 논쟁이 일었다. 당시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이었던 김광두 서강대 명예교수가 “생산, 투자, 수출 등 지표를 볼 때 경기가 침체 국면의 초입 단계에 있다”고 말한 것이 발단이었다. 정부는 즉각 반발했다. 김동연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는 “월별 통계로 경기가 침체 국면이라 판단하는 것은 성급하다”고 받아쳤다. 이후 몇몇 경제학자와 민간경제연구소도 경기가 꺾였다는 진단을 내놨지만 그때마다 정부는 “침체는 아니다”고 일축했다.

그로부터 1년여가 흐른 20일. ‘경기가 2017년 9월 정점을 찍고 하강하고 있다’는 통계청의 공식 판단이 나왔다. 최근까지도 ‘경제엔 문제가 없다’고 자신했던 정부의 오판이 도마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정부가 경기 하강기에 최저임금과 법인세 인상, 부동산 규제 강화 등 경제에 부담을 주는 정책을 쏟아내 사태를 악화시켰다는 비판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경고 무시하다 위기 자초한 정부

2017년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3.2%를 기록했다. 정부는 2014년 이후 3년 만에 3%대 복귀라고 자축했다. 하지만 그해 하반기부터 불안 징조는 있었다. 현재 경기를 종합적으로 보여주는 ‘동행지수 순환변동치’가 2017년 6월 0.1포인트 하락한 것이다. 8개월 만의 첫 감소였다. 동행지수는 그해 10월, 12월에도 마이너스를 보이더니 작년 5월부터 올 3월까지 11개월 내리 하락했다.

이날 통계청의 경기 정점 판단은 새로운 경제 지표를 갖고 한 것은 아니다. 동행지수와 같은 경기종합지수의 과거 흐름을 보니 내림세가 뚜렷해 2017년 9월 이후 경기가 내리막을 걷고 있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해외에서도 한국 경제에 대한 경고가 여러 차례 나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경기선행지수가 대표적이다. 이 지수는 6개월 뒤 경기를 전망하는 지표다. 한국의 경기선행지수는 2017년 5월 정점에 오른 뒤 이후 26개월 연속 하락했다.

그럼에도 정부는 이런 경고를 내내 무시하다가 올 4월에야 ‘최근 경제동향’ 보고서를 통해 “경기가 부진하다”는 진단을 처음 내렸다. “경제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지난 16일 발언에서 보듯 아직까지 경기를 낙관하는 시각도 적지 않다.

“소주성이 경기 악화에 기름 부어”

정부 정책이 경기 침체를 더 악화시켰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정부는 2017년 12월 법인세와 소득세 최고세율을 인상했고 이듬해 1월엔 최저임금을 16.4% 올렸다. 지난해 7월 300인 이상 기업과 공공기관을 상대로 근로시간 단축까지 시행했다.

수도권 집값을 잡겠다며 대폭 강화한 부동산 규제는 주택 거래를 위축시켜 경기 하강에 일조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기업 최고경영자의 산업재해 책임을 크게 강화한 산업안전법 개정안, 유해물질 관리 기준을 엄격히 한 화학물질관리법 개정안 등이 나오자 산업계에선 “규제가 너무 세져 한국에서 기업하기 어렵다”는 아우성이 터져나왔다.

한국은행의 통화정책도 결과적으로 실기가 아니었냐는 의견도 나온다. 한은은 2017년 11월과 지난해 11월 각각 연 0.25%포인트 기준금리를 올렸다. 경기 하강기에는 금리를 내리는 게 보통인데 반대로 움직였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경제에 부담을 주는 것이 아니라 성장률을 끌어올릴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강력한 재분배와 복지정책으로 저소득층의 소득이 오르면 소비가 활발해지고 기업 이익도 덩달아 개선된다는 것이다. 이런 경제 실험에도 불구하고 경기가 계속 하락하고 최근엔 사상 초유의 마이너스 물가 현상마저 나타나면서 정부 주장이 무색해졌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제라도 정부 정책의 방향타를 투자 활성화 등 혁신성장으로 확 틀지 않는 한 경제가 회복되기 힘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민준/성수영 기자 morand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