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아파트 전세 시장이 불안한 조짐을 보이고 있다. 강남권에선 전셋값이 연초 대비 2억원 뛰고, 전세 매물은 품귀 현상을 빚고 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시행을 앞두고 더 큰 시세 차익을 기다리는 분양 대기자들이 늘면서 전세 수요가 증가하자 전셋값이 오르고 있다”고 분석했다.
“두 달 새 1.5억 껑충”
서울 아파트 전셋값이 갈수록 치솟고 있다. 진원지는 강남 서초 등 강남권이다. 우수 학군을 갖춘 대치동 아파트 전셋값은 두세 달 만에 1억5000만원 급등했다. 18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대치동 래미안대치랠리스 전용면적 84㎡는 지난달 14억원(15층)에 전세가 나갔다. 직전 거래가인 4월 12억5000만원(5층)과 비교해 1억5000만원 올랐다.
대치동 H공인 관계자는 “전용 84㎡ 전세 물건은 최소 14억5000만원을 호가한다”며 “관망세로 멈춰 있던 매매 거래가 5~6월부터 살아나면서 전셋값도 덩달아 올라가고 있다”고 말했다. 7월 13억5000만원(4층)이던 대치SK뷰 전용 93㎡ 전셋값은 이달 15억원(13층)으로 치솟았다. 2017년 8월(16억원) 후 가장 비싼 가격이다.
반포동에서는 연초 대비 2억원가량 전셋값이 뛰었다. 반포동 래미안퍼스티지 전용 84㎡는 지난달 14억5000만원(24층)에 세입자를 찾았다. 올해 최고가다. 6월 최고 12억8000만원(31층)에 거래된 뒤 7월(14억원, 8층)에 이어 계속 올랐다. 반포자이 전용 84㎡도 이달 12억8000만원(26층)에 세입자를 찾아 연초인 2월(11억원) 대비 2억원가량 상승했다. 반포동 J공인 관계자는 “반포자이 전용 84㎡ 주택형이 1000가구 넘는데 전세 매물이 1~2개밖에 없을 정도로 수요에 비해 공급이 턱없이 부족하다”며 “연초 떨어졌던 전셋값이 5월부터 오르면서 지난해 하반기 시세를 회복했다”고 귀띔했다.
서초 강남뿐 아니라 올해 ‘입주 폭탄’에 시달린 송파 강동 등도 전세가격이 오름세를 타고 있다. 1월 최고 7억5000만원(19층)에 거래된 가락동 헬리오시티 전용 84.98㎡는 지난달 8억3000만원(14층)에 세입자를 구했다. 고덕동에서는 고덕래미안힐스테이트 84.8㎡ 전셋값이 1월 최고 5억8000만원(5층)에서 지난달 6억2000만원(11층)으로 올랐다.
“분양가 상한제, 전셋값 상승 부추겨”
전셋값 상승세는 통계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지난 9일 기준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전주 대비 0.04% 올랐다. 7월 첫째주 이후 10주 연속 상승세다.
전세 거래량도 크게 늘었다. 국토부에 따르면 7월 전국 주택 전세 거래량은 9만8183건으로 지난해 동월 대비 12.6% 증가했다. 국민은행이 발표하는 서울 주택 전세수급지수는 지난달 136.4를 기록했다. 2월 100 이하를 밑돌던 전세수급지수는 3월(103.8) 이후 계속 올랐다. 전세수급지수가 100을 넘으면 수요 대비 공급이 부족하다는 의미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정부의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시행 예고가 전셋값 상승을 부추겼다고 지적한다. ‘로또 아파트’를 기다리는 청약 대기 수요 증가로 집을 사기보다 전세로 거주하는 수요가 늘어난 영향이다. 박원갑 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최근 서울 아파트값이 크게 오른 데다 상한제 시행에 따라 당첨만 되면 시세 차익이 더 커질 것이란 기대에 전세로 눌러앉는 사람이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며 “가을 이사철 수요와 저금리 기조도 전셋값 상승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셋값 상승으로 전세가격과 매매가격 차이(갭)가 줄면서 집값 상승세가 더 가팔라질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서울 강남 등 수요가 많은 지역에 입주 물량이 늘어야 전셋값이 안정세에 접어들 것”이라며 “지금처럼 공급 부족이 지속되면 강남권 신축 단지 위주로 집값이 더 오를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양길성 기자 vertig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