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K TV 시장 주도권 다툼에 나선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정면충돌했다.
지난 7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유럽 가전전시회 'IFA 2019'에서 삼성전자의 QLED 8K TV를 겨냥해 "가짜 8K"라고 작심 비판한 LG전자와 '무대응'으로 일관했던 삼성전자가 같은 날 나란히 기술 설명회를 열고 경쟁사 TV를 비판한 것이다.
◆ LG "삼성 8K TV는 가짜…소비자 기만 멈춰야"
LG전자가 선공에 나섰다. LG전자는 17일 오전 여의도 LG트윈타워에서 개최한 '8K TV 기술 설명회'에서 "삼성전자는 소비자 기만을 멈추고 국제 규격에 걸맞은 제대로 된 8K TV를 내놓아야 한다"며 저격했다.
LG전자는 이날 별도로 마련된 전시관에서 삼성전자의 QLED 8K TV와 LG전자의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4K TV를 나란히 전시하고 '화질 차이'를 조목조목 설명했다. 특히 삼성전자 TV를 아예 분해한 뒤 삼성의 기술인 퀀텀닷(QD) 필름을 뜯어보이는 등 기술 차이를 비교할 수 있도록 공격적으로 시연했다.
남호준 LG전자 HE연구소장(전무)은 "경쟁사는 액정표시장치(LCD) TV에 색 보정을 위한 퀀텀닷(QD) 필름을 붙여놓은 것을 QLED로 명명, 마치 스스로 빛을 내는(자발광) 완전한 QLED TV인 것처럼 오해의 소지를 만들었다"며 "피해는 비싼 값을 내고 8K TV를 구매하는 소비자에게 돌아간다"고 말했다.
LG전자는 삼성전자 QLED 8K TV는 화소 수만 충족했을 뿐, 화질이 국제 기준에 훨씬 못 미쳐 8K TV라고 불러선 안 된다고 거듭 주장했다. 한 마디로 '이론 화질'만 8K일뿐 '실제 화질'은 8K가 아니라는 것.
이론적으로 8K TV의 해상도는 7680x4320으로 4K(3840x2160)의 4배 면적이다. 소비자가 이를 온전히 감상하려면 약 3317만개 화소가 모여 있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화면을 가득 채운 화소 수가 아니라, 화소가 뿜어내는 화면의 품질 확보라는 게 LG전자의 설명이다.
LG전자가 내세운 품질 기준은 국제 표준으로 쓰이는 '화질 선명도(CM)'다. CM(contrast modulation)은 국제디스플레이계측위원회(ICDM)가 해상도 표준규격 가운데 하나로 정한 측정 기준이다. 삼성전자 역시 ICDM의 회원사로 이곳에서 정한 표준규격을 준용해왔다.
CM을 소비자 관점에서 표현하면 '화소의 개수만큼 밝기와 색깔이 제대로 표현되는지' 측정하는 지표다. 소비자가 TV를 시청할 때 검은색은 검은색으로, 흰색은 흰색으로 얼마나 가깝게 인식할 수 있는지 평가한다고 보면 이해가 쉽다.
예컨대 CM값을 측정할 땐 화소를 '흑-백-흑-백'으로 번갈아 배치해 검은색과 흰색이 얼마나 선명하게 구분되는지 본다. 만약 흰색 화소 빛이 새어 나와 바로 옆 검은색 화소를 침범하면, 화소 간 밝기 차이가 줄어들어 CM값이 낮아진다. 색상 간 구별력이 떨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소비자 입장에선 다소 뿌연 색깔을 봐야 한다.
백선필 LG전자 TV상품전략팀장은 "나노셀 8K TV는 화질 선명도가 90%인 반면 경쟁사 제품은 12%에 불과하다"며 "QLED 8K TV는 ICDM이 정한 CM 최소 기준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아예 8K 논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했다. ICDM은 화질 선명도 기준을 '최소 50%'라고 정했다.
LG전자 주력 제품인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TV는 형광성 유기화합물을 기반으로 한 발광 소자가 스스로 빛을 내 별도 광원이 필요 없다. 발광다이오드(LED)와 백라이트(광원)가 필수인 LCD TV에 비해 빛이 옆으로 새는 현상 등이 없어 원색에 가까운 표현력을 낼 수 있는 게 장점으로 꼽힌다. 반면 LCD TV는 가격 경쟁력에서 OLED TV에 앞선다.
백 팀장은 "소비자가 전문가 수준으로 화질 선명도를 구분하지 못한다고 해서 기준에 맞지 않는 TV를 내놓고 8K라고 주장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면서 "비싼 값을 지불하고 8K TV를 구매하는 소비자에게는 그만큼의 가치를 줄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 삼성 "LG는 1920년대 기준…화질은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삼성전자도 이날 오후 서초구 서울R&D캠퍼스에서 '8K 화질 설명회'를 열고 LG전자의 주장을 정면 반박했다.
지난 7일 IFA 2019에서 LG전자의 선제 공격에 "LG전자가 제시한 기준이 합당한지 잘 모르겠다"며 다소 무심한 반응을 보였던 삼성전자도 맞대응이 불가피하다고 본 셈이다.
용석우 삼성전자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 개발팀 상무는 "8K 화질은 다양한 광학적 특성과 화질을 구현하는 시스템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며 "경쟁사가 8K 기준으로 얘기하는 CM은 1927년에 발표된 개념으로, 초고해상도 컬러디스플레이 평가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 삼성 QLED 8K TV는 국제표준기구(ISO)가 규정한 해상도 기준을 충족할 뿐만 아니라 독일 화질 인증기관 VDE의 인증도 받았다고 강조했다.
삼성전자 역시 삼성 QLED 8K TV와 LG전자의 OLED TV를 비교 시연하며 LG TV가 8K 콘텐츠를 제대로 구현하지 못한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삼성전자는 8K 이미지 파일, 8K 동영상 파일, 8K OTT 동영상 링크를 잇따라 띄우는 방식으로 비교 시연을 진행했다.
용 상무는 "경쟁사 TV에선 8K 콘텐츠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화면이 깨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꼬집었다.
이처럼 두 회사가 '상호비방'에 나선 것은 8K TV 시장의 주도권 다툼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시장조사업체 IHS마킷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QLED와 8K 등을 앞세워 올 2분기 글로벌 TV 시장에서 점유율 30%(31.5%·금액 기준)를 돌파하는 등 그야말로 '진격'하고 있다. 분기 점유율로는 2013년 1분기 이후 약 6년 만에 최고치다. 2위인 LG전자(16.5%)와 점유율 차이를 약 2배 가까이 벌렸다.
OLED로 TV 시장에서 진보한 기술을 내놨다고 자평하는 LG전자 입장에선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성적표란 평가다.
기본적으로 QLED TV 패널은 LCD라 LG전자의 OLED TV보다 가격 경쟁력이 있다. 실제로 이같은 가격 경쟁력이 소비자들에게 통했다. 올 2분기 글로벌 QLED 판매량은 120만대로 전 분기보다 28만대 늘었다. LG전자와 소니 등이 주도하는 OLED(61만대)와의 차이를 2배로 벌렸다.
노정동 한경닷컴 기자 dong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