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함지뢰 도발로 두 다리 잃었는데 '공상' 판정받은 하재헌 중사

입력 2019-09-17 15:34
수정 2019-09-17 15:47

2015년 북한 목함지뢰 도발로 두 다리를 잃은 하재헌 예비역 중사가 국가보훈처로부터 ‘전상(戰傷)’이 아닌 ‘공상(公傷)’ 판정을 받은 것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보훈처가 그의 상이을 두고 적과 교전이나 전투 또는 이에 준하는 직무수행이 아닌 교육·훈련 등 일상적인 공무수행 중 입은 것이라는 판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하 중사가 이의신청을 하면서 보훈처가 재논의하겠다고 밝혔지만 국가유공자 ‘홀대’ 논란은 사그러들지 않고 있다.

보훈처는 17일 이번 판결과 관련해 “독립심사기구인 보훈심사위원회의 내·외부 법률전문가 등 위원 11명이 참여해 국가유공자법에 규정된 심사기준 및 절차에 따라 심도 있는 논의 과정을 거쳤다”며 “과거 유사한 지뢰폭발 사고 관련 사례 역시 종합적으로 검토한 뒤 의결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하 중사의 이의신청을 본회의에 올려 다시 한번 깊이 있게 논의하겠다”며 "국방부의 군인사법 시행령과 보훈처의 유공자법 시행령에 있는 전상과 공상규정에 대한 일부 차이 때문에 발생한 문제인 만큼, 앞으로 법률개정 등의 방안도 검토할 예정"이라고 했다.

목함지뢰 도발이 일어났던 2015년 당시 군 당국은 하 예비역 중사의 상이를 놓고 북한 도발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육군은 그가 전역할 당시 '적이 설치한 위험물에 의해 상이를 입거나 적이 설치한 위험물 제거 작업 중 상이를 입은 사람'을 전상자로 규정한다는 내부 규정에 따라 전상 판정을 내렸다. 합동참모본부도 북한 도발이라는 조사 결과를 내놓은 바 있다. 그러나 전상이 아니라는 보훈처의 의견대로라면 그는 북한 도발이 아닌, 평시 수색 작업으로 사고를 당한 셈이 된다.

보훈처는 “국가유공자법에 해당 사안에 대한 조항이 명확하지 않아 공상 판정이 불가피했다”고 해명했다. 군 당국의 내부 규정과 달리 보훈처의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는 하 중사의 부상을 ‘전상’으로 인정할 수 있는 조항이 없다는 것이다. 군에서 발생한 대다수 지뢰사고에 보훈처가 공상 판정을 내린 것과 같은 맥락이다. 보훈처 관계자는 “천안함 피격 사건은 ‘전투 또는 이와 관련된 행위 중 상이’로 판단했으며, 목함지뢰 폭발 사건은 ‘경계ㆍ수색ㆍ매복ㆍ정찰활동ㆍ첩보활동 등의 직무수행 중 상이’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하 중사는 보훈처의 판정이 부당하다며 청와대 국민 청원 게시판에 청원글을 올린 상태다. 전역 후 장애인 조정 선수의 길을 걷고 있는 하 예비역 중사는 “이의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소송도 내는 등 할 수 있는 모든 걸 하겠다”며 “북한 도발에 희생당하고 앞으로 나처럼 억울한 일을 겪을 수 있는 전우들을 위해서라도 문제제기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임락근 기자 rkl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