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의 주요 석유시설이 공격당한 뒤 첫 원유 선물 거래일인 15일(현지시간) 국제 원유 가격은 1990년 걸프전 이후 가장 크게 요동쳤다. 한때 19% 넘게 치솟았다가 이후 상승률이 다소 낮아졌다. 시장에선 앞으로 유가가 안정세를 나타낼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사우디 석유시설 완전 재가동에 상당한 시간이 걸리거나, 미국과 이란 간 갈등이 고조되면 국제 유가는 또다시 급등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이날 저녁 런던 ICE선물거래소가 거래를 시작하자 브렌트유 선물 11월물은 바로 19.5%까지 치솟아 배럴당 71.95달러를 기록했다. 지난 5월 중순 이후 처음으로 70달러를 넘어섰다.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서부텍사스원유(WTI) 선물 10월물은 장 초반 15% 뛰어 배럴당 63.34달러에 거래됐다.
유가가 급등하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전략비축유 방출 허용 방침을 밝혔다. 전략비축유는 석유 공급이 막힐 때를 대비해 각국 정부가 저장해 놓고 있는 석유다. 각국 정부는 통상 석 달치 소비량을 창고에 쌓아두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전략비축유 방출 허용 소식이 전해지자 유가는 빠른 속도로 안정되기 시작했다. 브렌트유는 10% 안팎 오른 66달러대, WTI는 9% 오른 59달러대로 밀렸다.
시장에선 향후 국제 유가가 사우디 공격 이전 수준으로 하향안정세를 찾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사우디가 현재 1~2개월치 원유 재고를 갖고 있으며 △세계 원유 비축량이 30억 배럴에 이르고 △각국 정부가 언제든 비축유를 방출할 수 있다는 점을 안정 전망의 배경으로 꼽고 있다. 한국 정부도 비상시 전략비축유를 방출할 것이라고 밝혔다.
문제는 공격받은 사우디 시설의 완전 재가동 시점이다. 사우디는 우선 16일까지 가동 중단된 시설의 3분의 1가량이 재가동될 것으로 예상했다. 또 수주 내 전체가 완전 재가동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하지만 이와 달리 복구에 3개월 이상 걸리면 국제 유가가 다시 충격받을 것이란 전망이 많다. 에너지 정보업체 S&P 글로벌 플랫츠의 새라 코틀 글로벌 총괄은 CNBC와의 인터뷰에서 “사우디의 가동 중단이 장기간 지속되면 유가는 배럴당 80달러 이상으로 쉽게 오를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보다 더 큰 변수는 미국과 이란 간 갈등 정도다. 갈등이 커져 전쟁이 터진다면 국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 이상으로 치솟을 것으로 미국 월가는 내다보고 있다. 지난 5~6월 사우디의 유조선 등이 피습되고 소행의 배후에 이란이 있는 것으로 지목됐을 때도 최악의 경우 배럴당 100달러 이상의 유가 전망이 나왔다.
뉴욕=김현석 특파원/서민준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