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엽충, 암모나이트, 화폐석, 매머드, 시조새.’
소설가 최지운(40)이 최근 펴낸 장편소설 <삼엽충>(밥북)에는 이런 ‘화석’으로 불리는 고학번 대학원 선배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청년 취업난으로 인해 취업 전까지 학생 신분을 유지하고자 졸업을 미뤄놓고 마치 화석처럼 학교에 남아 후배들을 불편하게 하는 존재다. <삼엽충>은 일반 전공보다 취업률이 저조한 문예창작 및 예술계열 전공 ‘화석’들의 팍팍한 삶을 그린다.
명성대 문학영상공연학과 대학원 박사과정을 밟으며 후배들에게 이른바 ‘삼엽충’이라고 불리는 ‘진 교수’가 주인공이다. 그의 시선에서 본 자신과 다른 ‘화석’ 선후배들의 ‘웃픈’ 모습이 피카레스크식 구성(독립된 여러 개 이야기를 모아 하나의 계통을 만드는 소설 유형)으로 드러난다. 진 교수 등 ‘장수’ 대학원생들은 각각 드라마 작가, 시나리오 작가, 소설가, 배우, 공연기획자 등을 꿈꾸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나이는 먹었지만 아무것도 되지 못한 채 공연히 공간만 차지하고 있는 이들을 대학생 후배들은 뒤에서 고생대·중생대·신생대 대표 화석으로 부르며 손가락질한다. 하지만 이들은 한마디 항변도 못한다. 그저 화석이라는 딱지를 떼고 작가로 성공해 멋지게 캠퍼스를 떠날 방법을 모색할 뿐이다.
작가는 제1회 한경신춘문예 장편소설 부문에 당선된 <옥수동 타이거스>에서 재개발 지역인 서울 옥수동을 배경으로 공고생들의 사랑과 우정, 꿈을 향한 도전을 재치 있게 그려냈다. <삼엽충>에선 청춘이라고 부르기엔 다소 모호한 대학원생들과 젊은 대학생들 간 크고 작은 대립을 통해 젊은 세대 간 갈등을 부각했다. 학교 측 공간 재조정 사업으로 랩(lab)이 존폐의 위기에 빠진다. 대학원생들은 비루했던 각자의 꿈을 이루기 위해 오랜 시간 분투하고 고락을 나눈 곳이자 유일한 안식처였던 랩을 지키기 위해 투쟁에 나선다. 반면 대학생들은 “없어지면 북카페로 가면 그만”이라며 이들의 투쟁 합류 요청을 거부한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두 세대 간 가치관 차이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소설은 유쾌하게 끝을 내지만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학교라는 작은 사회에서조차 제대로 된 인간이 아니라 화석으로 남을 수밖에 없는 이들의 현실 속에서 암울한 미래에 삶을 저당잡힌 오늘날 청년들의 모습이 읽는 내내 그려지기 때문이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