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부동산시장이 2년째 고꾸라지고 있다. 수년째 공급과잉이 이어진 데다 규제까지 더해진 영향이다. 대도시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이던 집값은 대전에 밀렸다. 미분양은 쌓이는데 앞으로도 대규모 새 아파트 공급이 지속될 예정이어서 장기 침체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방 대장’ 옛말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부산 아파트 매매가격 변동률은 지난달 -0.29%를 기록해 1년 11개월 연속 떨어졌다. 주간 단위로 보면 2017년 9월 셋째주 이후 한 차례도 반등하지 못했다. 조정대상지역으로 묶인 해운대구와 수영구 아파트값은 각각 103주와 102주 내리 떨어졌다. 그러는 사이 주택 중위가격은 대전에 추월당했다. 중위가격이란 모든 집을 가격 순서대로 나열했을 때 가운데 있는 주택의 가격이다. 부산의 중위가격은 지난달 2억1938만원을 기록했다. 대전은 2억2017만원을 나타내면서 근소한 차로 부산을 앞질렀다.
개별 단지들은 억대 낙폭을 보이고 있다. 부산에서 주거선호도가 높은 것으로 꼽히는 수영구와 해운대구 일대 집값조차 맥을 못 추는 중이다. 수영구 민락동 ‘부산더샵센텀포레’ 전용면적 84㎡ 고층 물건은 이달 초 4억1500만원에 실거래됐다. 한 층 위 같은 주택형이 연초 5억7500만원에 거래된 것과 비교하면 1억6000만원가량 하락한 가격이다. 센텀시티를 끼고 마주보고 있는 해운대구 재송동 ‘더샵센텀파크1차’ 매맷값도 크게 떨어졌다. 이 단지 전용 84㎡ 저층은 연초 대비 6000만~8000만원 내린 5억1200만원에 이달 손바뀜했다.
옛 도심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부산시청 인근인 동래구 사직동 ‘사직쌍용예가’ 전용 84㎡는 올 1~2월만 해도 3억 중후반대에 거래됐지만 이달엔 3억원에 계약이 이뤄졌다. 최고 4억5000만원까지 실거래됐던 주택형이다.
‘청약 광풍’이 불었던 단지의 프리미엄은 확 빠졌다. 22만9000여명이 청약해 역대 가장 많은 청약통장을 쓸어담았던 ‘명지더샵퍼스트월드’의 분양권 웃돈은 수천만원 떨어졌다. 이 단지 전용 84㎡ 중층 분양권은 이달 3억6900만원에 손바뀜했다. 2년 전 분양가 대비 3000만원 오른 수준이다. 다른 주택형들의 웃돈도 2000만~3000만원 남짓이다. 명지동 B공인 관계자는 “분양 직후 형성되는 웃돈인 ‘초피’는 1억원을 호가했다”며 “전매제한이 풀릴 때쯤부터 시장 상황이 안 좋아져 요즘은 그때 가격을 받을 수 없다”고 전했다.
미분양은 쌓이는 중이다. 7월 기준 부산 미분양주택은 4855가구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1600가구가량 늘었다. 금융위기 여파로 전국 부동산시장이 침체돼 있던 2012~2013년 이후 가장 많은 물량이다. 북구 만덕동신타운을 재건축하는 ‘신만덕베스티움에코포레’는 90%가 미분양이다. 분양물량 256가구 가운데 232가구는 아무도 계약하지 않았다. 대형 건설사가 짓는 단지라고 예외는 아니다. 영도구 동삼동 ‘부산오션시티푸르지오’의 계약률도 50%를 넘지 못한다. 지난해 연말 청약을 받은 이 단지는 846가구 가운데 455가구가 미분양이다.
◆4년 동안 10만 가구 입주
지독한 집값 불황의 배경엔 공급과잉이 있다. 인구는 줄고 있는데 매년 2만 가구가량의 새 아파트가 줄지어 입주했다. 수급균형이 완전히 깨진 것이다. 부동산 활황기에 재개발·재건축이 속도를 낸 데다 명지국제도시와 일광신도시 등 택지 개발 물량까지 더해졌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올해 부산 아파트 입주물량은 2만5000가구를 넘겨 정점을 찍을 예정이다. 내년도 비슷한 규모다. 2만4900가구가 대기 중이다. 2017년부터 4년 새 10만 가구 공급이 집중되는 셈이다.
공급 예비 물량도 만만찮다. 옛 시가지에선 정비사업이 착착 진행되고 있다. 부산시가 집계한 재개발·재건축 추진 구역은 모두 121곳이다. 이 가운데 관리처분계획인가를 받아 사업 8부능선을 넘은 정비구역이 27곳이다. 사업이 정상적으로 진행된다면 이들 단지는 앞으로 5~7년 내에 입주하게 된다.
규제도 부산 부동산시장을 짓누르고 있다. 부산은 2016년 11월과 2017년 8월 두 차례에 걸쳐 7개 지역(해운대·연제·동래·수영·남·부산진구·기장군)이 조정대상지역으로 지정됐다. 이 가운데 부산진구 등 4개 지역은 지난해 해제됐지만 해운대구와 수영구, 동래구는 아직 조정지역으로 묶여 있다. 이들 지역에선 여전히 양도소득세 중과와 대출규제가 작동한다. 2017년 11월엔 지방 민간택지에도 분양권 전매제한을 적용할 수 있도록 ‘주택법’이 개정되면서 소유권이전등기를 할 때까지 분양권도 되팔지 못하게 됐다. 주택 거래가 앞뒤로 꽁꽁 막힌 셈이다.
부산시는 부동산시장 침체가 심각한 상황이라고 보고 국토교통부에 조정대상지역 해제를 꾸준히 요청하고 있다. 지난달엔 해운대구가 단독으로 해제심의를 요청했다. 조정대상지역 지정 필수 요건은 ‘최근 3개월 동안의 주택가격상승률이 물가상승률의 1.3배를 초과하는 경우’로 규정돼 있는데 해운대구는 이미 기준을 벗어났다는 이유에서다. 지난 5~7월 해운대구 집값이 1% 떨어지는 동안 물가상승률은 0.32% 하락했다. 해운대구 관계자는 “부동산 침체에 따른 민원이 계속 제기되고 있다”며 “지난달 28일 국토부에 공문을 보내 조정지역 해제를 요청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달 진행된 주거정책심의위원회에서 해운대구에 대한 조정지역 해제 논의는 이뤄지지 않았다. 국토부 관계자는 “안건 상정이 이미 끝난 시점에서 공문이 접수됐다”며 “다음 심의에서 다뤄질 예정”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부산 부동산시장이 규제 해제 여부 등에 따라 변곡점을 맞을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상우 익스포넨셜 대표는 “올해와 내년엔 선호도 높은 도심에 새로 공급되는 재개발 아파트가 많다”며 “이들 신축 단지를 중심으로 거래가 활발하게 이어진다면 분위기가 살아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금리가 낮아지고 있는 점도 서서히 침체를 벗어나는 요인이 될 수 있다”면서 “다만 여전히 많은 공급 물량과 르노삼성 문제 등 지역경제 현안이 리스크”라고 설명했다.
전형진 기자 withmol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