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디스의 경고 "韓기업 신용 무더기 강등될 가능성 높다"

입력 2019-09-10 17:40
수정 2019-09-11 01:15

글로벌 신용평가회사 무디스가 앞으로 1년간 한국 기업들의 신용등급이 무더기로 강등될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했다. 국내 경기가 지속적으로 나빠지는 가운데 미국과 중국의 무역갈등 장기화 등의 여파로 기업 영업실적이 악화될 것이란 우려를 반영했다.

무디스는 10일 ‘한국 기업 실적 및 신용도 악화 추세’라는 보고서를 통해 무디스가 신용등급을 매기는 한국 비금융기업 27곳 중 19곳이 올해 상반기 영업실적 악화로 신용도가 부정적으로 조정될 가능성이 있다고 발표했다. 실적이 등급에 긍정적인 기업은 다섯 곳, 중립적인 기업은 세 곳을 꼽았다. 무디스가 현재 신용등급에 ‘부정적’ 전망을 붙였거나 등급 강등을 검토 중인 한국 민간기업은 모두 13곳이다. ‘긍정적’ 전망이 달린 기업은 전무하다.

유완희 무디스 수석연구원은 “반도체, 정유, 석유화학, 철강 등 경기 변동성이 큰 산업에 속한 기업이 수요 부진과 업황 둔화를 겪고 있다”며 “미국과 중국의 무역갈등으로 수출 의존도가 높은 기업들이 지속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중국을 상대로 원자재와 부품 수출을 많이 하는 전자와 화학업종에서 이 같은 변화가 특히 두드러질 것”으로 전망했다.

유 수석연구원은 “일본의 수출규제는 행정절차를 지연시키는 데 그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한국 기업 실적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으로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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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디스 "수출 줄어든 전자·화학 부정적 전망"
韓기업 무더기 신용 강등 경고

글로벌 신용평가사들이 한국 기업들의 신용등급 강등 위험이 커졌다는 경고음을 한층 높이고 있다. 비교적 낙관적인 전망을 해오던 무디스마저 실적 악화가 신용위험 확대로 전이될 것이란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경기 하강에 따른 실적 부진에도 불구하고 고배당 등 주주환원에 따른 현금유출 부담이 만만치 않던 차에 무역 갈등이 추가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는 평가다.

무디스는 하반기 들어 잇따라 한국 기업의 신용등급에 적색 신호를 켜고 있다. 지난 7월 회사 분할을 결정한 KCC(신용등급 Baa3)를 하향 조정 검토 대상에 올렸고, SK하이닉스 신용등급(Baa2)에도 ‘부정적’ 전망을 붙였다. 지난달에는 강등 석 달 만에 이마트 신용등급(Baa3)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변경했고 SK이노베이션(Baa1)과 자회사인 SK종합화학(Baa1), LG화학(A3)의 신용도에 줄줄이 ‘부정적’ 전망을 달았다. 무디스는 이들 기업 모두 영업환경 악화로 수익성이 저하되고 차입 부담이 커진 점을 부정적 요인으로 지적했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분쟁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일본과의 무역갈등이 더해지면서 한국 기업들은 더욱 험난한 영업환경에 내몰리게 됐다는 평가다. 올초부터 비관적인 전망을 내놨던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올 7월 초 ‘높아진 신용위험에 직면한 한국 기업들’이란 보고서를 통해 “한국 기업의 신용등급이 본격적인 하락 국면에 진입했다”고 분석했다.

일본이 한국에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소재 수출규제를 강화한 직후였다. S&P는 앞으로 1년간 한국 기업의 신용 악화 부담이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신평사가 올 들어 신용등급을 내렸거나 등급 전망을 이전보다 나쁘게 변경한 기업은 9곳으로 2014년 이후 5년 만에 가장 많다.

박준홍 S&P 이사는 “글로벌 수요 둔화와 무역을 둘러싼 갈등 확대로 반도체와 스마트폰뿐 아니라 자동차, 정유화학 등 수출 의존도가 높은 업종이 1~2년간 어려운 상황에 놓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내 신용평가사들의 시선도 부정적으로 바뀌고 있다. 한국기업평가, 한국신용평가, 나이스신용평가 등 국내 3대 신용평가사가 올 상반기 신용등급을 내린 기업 수는 총 44곳으로 2016년(86곳) 이후 3년 만에 가장 많았다. 등급 상하향배율(상향 건수/하향 건수)도 0.68배로 지난해 상반기(1.13배)보다 뚝 떨어졌다. 지난해 6년 만에 멈췄던 기업 신용도 하락 추세가 올 들어 재개됐다는 평가다.

김진성 기자 jskim102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