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키운 캐릭터, 연예인 모델 안부럽다"…은행들 '제2 라이언' 도전장

입력 2019-09-10 17:31
수정 2019-09-17 17:50
아기 공룡이 힙합 스타일의 모자를 돌려 쓰고 춤을 춘다. 목에는 ‘쇼미 더 덕담’이란 금목걸이가 걸려 있다. 선글라스를 낀 새와 돼지도 마이크를 들고 들썩인다. 우스꽝스러우면서도 귀여운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난다. 농협은행이 추석을 앞두고 만든 ‘덕담 캠페인’ 홍보 콘텐츠의 일부다. 자체 캐릭터 ‘올원 프렌즈’에 힙합 경연 TV 프로그램 ‘쇼미 더 머니’의 의상과 콘셉트를 접목했다.

금융권에서 캐릭터를 키우려는 경쟁이 뜨겁다. 불은 카카오뱅크가 지폈다. ‘라이언’이란 캐릭터를 앞세워 빠르게 성장했다. 너도나도 ‘제2의 라이언’에 도전장을 내미는 이유다.


꿀벌부터 북극곰, 아기공룡까지

우리은행은 올 하반기 모바일 앱(응용프로그램) ‘위비뱅크’의 디자인에 대표 캐릭터인 ‘위비프렌즈’를 탑재하기로 했다. 캐릭터의 노출 빈도를 높인다는 전략이다. 신한은행은 모바일 앱 ‘쏠’을 홍보하기 위해 캐릭터 ‘쏠’의 이모티콘을 활용하고 있다.

자체 캐릭터를 보유한 금융회사들의 공통 목표는 ‘라이언 열풍’을 잇는 것이다. 카카오뱅크가 빠르게 확산된 요인 중 하나는 라이언을 새긴 체크카드라는 분석이 많다. 라이언처럼 잘 만든 캐릭터 하나는 유명 연예인 부럽지 않을 정도로 대중성과 주목도, 인기를 확보할 수 있다. 용도를 가리지 않고 어디든 활용할 수 있는 데다 콘셉트에 변화를 주기도 쉽다. 연예인과 달리 ‘사생활 리스크’가 없는 것도 장점이다.

금융권 캐릭터는 저마다 스토리를 갖고 있다. 은행권에서 유명한 캐릭터로는 우리은행의 ‘위비’가 꼽힌다. 위비의 정체는 꿀벌. 우리은행 관계자는 “꿀벌이 갖고 있는 빠르고 부지런한 이미지가 은행 비전과 맞아떨어진다고 봤다”고 말했다.

신한은행은 항해자들의 길잡이가 돼주던 별자리인 작은곰자리를 모티브로 삼아 북극곰 ‘쏠’이란 캐릭터를 만들었다. 쏠에겐 리노(공룡) 몰리(두더지) 슈(북극여우) 도레미(펭귄) 루루라라(물개) 등 탐험대 친구도 있다. 이들이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앞장서서 항해한다는 콘셉트다.

농협은행의 ‘올원 프렌즈’도 동물 캐릭터다. 올리(아기공룡)와 원이(어미새)를 필두로, 단지(돼지) 달리(강아지) 코리(코끼리) 등 5종이다. KEB하나은행은 친근한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해 머리에 별을 단 아기를 상징하는 ‘별돌이’라는 캐릭터를 갖고 있다. 별돌이의 여자 버전인 ‘별송이’도 있다. 여기에 캥거루, 곰, 악어 등 동물을 추가해 애니메이션처럼 만들었다.

사물을 형상화한 캐릭터도 있다. 국민은행의 ‘리브’는 행인의 주머니에서 떨어진 잔돈을 모티브로 삼았다. 자신이 동전인지 모른 채 세상 곳곳을 돌아다닌다. 때로는 들판의 노란 민들레가 됐다가 밤을 밝히는 전구가 되기도 한다. 동화에 버금가는 스토리텔링이란 평가가 많다. 2금융권도 캐릭터 키우기에 팔을 걷었다. 신협의 캐릭터는 새끼돼지 세 마리를 업은 어부바(돼지)다. 서민을 평생 업어주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캐릭터 ‘외부 수혈’도 한창

자체 캐릭터가 아니라 유명 캐릭터를 ‘수혈’하기도 한다. 농협은행은 최근 ‘개구쟁이 스머프’를 표지에 넣은 통장을 출시했다. 우리은행도 어린이들에게 인기가 높은 ‘핑크퐁과 아기상어’를 앞세운 통장을 만들었다. 이 통장들은 ‘맘카페’에서 인기 통장으로 입소문을 타고 있다. 우리은행은 11일 핑크퐁과 아기상어로 디자인한 현금자동입출금기(ATM)를 서울·경기 일부 지역에 설치한다.

SC제일은행은 ‘마블 통장’으로 마니아층을 형성했다. 2017년 4월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와 제휴를 맺은 뒤 마블 및 디즈니 캐릭터 디자인의 통장과 체크카드를 꾸준히 출시하고 있다. 올 3월엔 마블 캐릭터 ‘캡틴 마블’과 ‘닥터 스트레인지’를 내세웠다. SC제일은행 관계자는 “유명 캐릭터를 앞세운 상품은 주목도가 남다르다”며 “해당 캐릭터의 팬을 고객으로 끌어오는 효과도 있다”고 말했다. 신한카드는 지난 4월 NBC유니버설과 제휴를 맺고 ‘미니언즈’ 캐릭터를 입힌 체크카드를 선보였다. 결과는 대성공. 출시 138일 만에 30만 장 넘게 발급됐다.

일각에선 무작정 캐릭터 경쟁에 뛰어드는 게 능사는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직원조차 캐릭터의 존재를 모를 정도로 방치하는 금융사도 있다”며 “브랜드 인지도 확대와 수익까지 연결되도록 체계적인 전략을 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지은 기자 je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