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3.4’ ‘3.6’
골프 대회장에 가면 간혹 볼 수 있는 숫자다. 그린 빠르기, 즉 퍼팅했을 때 공이 얼마나 굴러갔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대회마다 다른데, 프로 대회도 1부, 2부, 3부 또는 메이저냐 일반 대회냐에 따라 달라진다. 국내 대회는 3.0~3.4 안팎인데 ‘유리알 그린’으로 불리는 미국 마스터스 오거스타 코스는 3.6~4.0까지 올라간다. 이 수치는 시간이 갈수록 올라가는 추세다. 김영 프로는 “프로 초년병 시절엔 2.7 정도도 빠르다고 느꼈는데 요즘은 이 정도면 느리다고 말들을 한다”고 말했다. ‘빠른 그린’이 대회의 자존심으로 치환되는 추세여서다.
이 수치는 어떻게 측정할까. 방법은 간단하다. ‘스팀프미터(stimpmeter)’라는 알루미늄 바(사진)로 잰다. 먼저 각 홀 그린의 평평한 곳을 찾아 스팀프미터를 20도 각도로 세운다. 스팀프미터 30인치(76㎝) 지점에 파인 홈이 있어 20도 각도로 기울이면 공이 저절로 굴러 내려간다. 차례로 3개의 공을 떨어뜨린 후 지면에 닿은 스팀프미터 끝부분부터 공이 멈춘 지점까지 공 3개의 평균 거리를 낸다. 반대편에서도 같은 방법으로 3개의 공을 굴러내리게 해 평균 거리를 구한다. 양쪽 평균의 평균을 낸 것이 그린 스피드다. 3.0이라면 3m를 굴러갔다는 얘기다.
이 방법은 미국의 엘리트 골퍼 에드워드 스팀프슨이 1936년 고안해냈다. 미국 매사추세츠주 아마추어 챔피언, 하버드대 골프팀 캡틴 출신인 그는 1935년 US오픈 당시 진 사라젠의 퍼팅이 그린을 한참 벗어나는 것을 보고 그린 스피드가 너무 빠르다고 생각했다. 측정 방법을 고민한 끝에 나무로 된 스팀프미터를 만들었다. 미국골프협회(USGA)가 1976년 나무를 알루미늄으로 대체했고 그해 US오픈에서 처음 사용했다. USGA는 2년 후인 1978년 스팀프미터를 공식 그린 스피드 측정 장비로 지정했다. 국내 투어와 골프장에서도 이 장비를 이용한다.
이 수치는 기후와 날씨, 시간대 등에 따라 달라진다. 이슬이나 빗물 등의 습기가 많은 날엔 아침보다 물기가 마른 점심 때가 빨라지지만 습기가 없는 건조한 날엔 오히려 오후에 약 10% 안팎까지 느려지기도 한다. 대회 기간 생장억제제를 써 오전 오후 그린 스피드를 최대한 일정하게 유지하는 ‘기술’을 쓰는 이유다.
김병근 기자 bk1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