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창] 부품·소재 국산화 과정에도 일본을 활용해야

입력 2019-09-09 17:12
수정 2019-09-10 00:05
한·일 관계 악화는 양국 모두에 손실을 가져오지만 한국이 상대적으로 더 큰 타격을 입게 된다. 한국의 총수입 가운데 일본으로부터 수입하는 비중은 10.2%로, 한국의 총수출 중 일본 수출 비중(5.0%)에 비해 압도적으로 크다. 일본이 한국으로부터 수입하는 비중은 4.6%로 엇비슷한 반면, 한국에 수출하는 비중은 7.1%로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K-stat 및 일본 재무성 통계·2018년). 일본의 대한(對韓) 수출 품목 가운데는 세계적으로 독점도가 높은 첨단 소재와 부품이 적지 않다. 이를 감안하면 일본의 수출규제가 국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짐작할 수 있다.

일본의 한국 수출규제 및 화이트리스트(수출절차 간소화 국가) 지정 제외를 계기로 한국 정부는 소재·부품 국산화율을 높여 대일 의존도를 줄이고자 관련 예산 배정을 늘리고 있다. 소재·부품 기술 수준을 일본을 능가할 정도로 끌어올린다는 비전은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투입 예산을 늘린다고 해서 금세 기대하는 만큼 품질을 높이기는 쉽지 않다. 일본이 강점을 보이는 소재·부품·장비는 ‘한우물 파기’로 오랫동안 기술·지식이 축적된 분야다. 한편으론 질 좋은 제품을 저렴하게 구입해 높은 부가가치를 붙여 이윤을 많이 내는 것이 기업 경영의 기본이라는 점에서 보면 국산화 달성이 항상 바람직한 것만은 아니다.

일본의 수출규제 및 화이트리스트 제외는 한국 상품의 원활한 생산을 어렵게 해 한국 경제의 불확실성을 높일 여지가 있다. 그렇다고 해도 일본의 수출규제 품목을 모두 국산화해 대처한다는 것은 비효율적인 방책이다. 마이클 조던이 자신이 비교우위에 있는 농구를 하고 정원 손질은 정원사의 힘을 빌리듯, 디지털 반도체는 한국이 만들고 아날로그 제조 장비는 일본의 힘을 빌리는 방법이 파이(경제 성장)를 더욱 크게 한다. 아직 한국은 생산장비 기술에서 일본의 정밀성을 당하기 어렵다. 소재·장비를 국산화하고 안정적 공급망을 이루기까지 예상보다 훨씬 큰 희생을 초래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일본의 수출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해당 제품을 국산화한다고 하더라도 그들(일본인, 일본 기술 및 상품)의 속성이 어떤지를 깊이 파고드는 전략이 더욱 유효하다. 무턱대고 서두르는 국산화보다 내부 정보 파악을 많이 한 상태에서 국산화를 추진하는 것이 더욱 큰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안과 밖의 구분’이 강한 일본이어서 이방인(외부인)과 내부자 간에 접할 수 있는 정보의 양적·질적 차이는 매우 크다. 극심한 구인난을 겪고 있는 일본 기업으로의 한국인 취업이 늘어나는 것은 구직난 해소는 물론, 그들 내부 정보를 접할 기회도 늘려 국산화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시바 료타로의 역사 소설 <언덕 위의 구름>은 일본이 1904년 러·일전쟁에서 이기는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 책을 보면 일본인 노동자가 러시아 함대를 건조하는 곳에서 일하며 함대 내부를 관찰한다. 이런 관찰 활동이 러·일전쟁을 일본에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었다. 러시아를 굴복시킨 일본은 그 후 실질적으로 한국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일본과의 싸움에서 더 이상 지지 않기를 바란다면 반일(反日) 감정 조장보다는 일본인의 사고방식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전제돼야 한다. 한국과 달리 일본은 아날로그적 사고로 한 분야에 천착하며 기술과 지식을 축적(stock)해가는 특징이 강한 사회다. 이들의 속성을 알고 일본 기업 취업을 위한 인재박람회 활성화 등 한국 경제 살리기에 도움이 되는 쪽으로 내실을 다지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