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이스라엘의 한 학자는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의 ‘몸짓언어(body language)’를 분석했다. 그는 이 분석을 바탕으로 후세인이 이스라엘보다 이란을 더 증오하기 때문에 이란을 침략할 가능성이 높다고 예측했다. 이 예측으로부터 11개월 후 이라크 군대는 국경을 넘어 이란을 침공했다.
또 다른 전문가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몸짓언어를 연구했다. 이 연구에 따르면 크림반도를 점령하기 전 푸틴 대통령은 자세나 눈의 움직임 등에서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서방세계가 그의 행동을 저지하지 않을 것이 확실해진 이후에는 보다 확신에 찬 몸짓언어를 보였다.
몸짓언어란 말이 아닌 다른 수단에 의한 의사소통을 말한다. 얼굴 표정, 목소리, 시선, 손짓, 몸짓, 호흡, 대화 시 거리 등 다양한 수단이 있다. ‘침묵의 언어’라고도 한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의사소통에서 몸짓언어가 차지하는 비중은 말보다 훨씬 크다. 말이나 문자 등 언어로 전달하는 의사소통은 25%에 불과하며, 몸짓언어에 의한 의사소통이 나머지 75%를 차지한다는 것이다.
앞의 두 사례는 몸짓언어가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준다. 상대방 심리를 파악하기 위해 언어에 의한 의사소통에만 머물러서는 안 되는 이유다. 중요한 것을 숨기고자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얼굴 표정, 제스처나 걸음걸이를 통해 무의식적으로 의도를 표출한다. 담배 피우는 방법, 시계를 보는 방법이나 타인을 쳐다보는 시선 등 기존의 행동방식에 변화를 보이게 된다.
의사소통의 75%가 몸짓언어
예를 들어, 자살폭탄을 터뜨리려는 사람의 대부분은 폭발 직전 불안한 표정과 행동거지를 보인다.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섹스 스캔들 관련 청문회에서 답변할 때 자주 코를 만졌다. 난처함, 곤혹스러움 등 불안한 심리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몸짓이었다. 국내 무대보다 글로벌 무대에서 몸짓언어에 의한 메시지가 더 중요하다. 언어와 문화가 상이한 사람들 간의 소통이나 협상에서는 상대방 심리를 파악하는 데 더 큰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몸짓언어의 유용성이 입증되자 이를 연구하고 실생활에 적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미국의 중앙정보국(CIA) 연방수사국(FBI) 등 첩보기관과 테러 담당기관들이 몸짓언어를 연구해 적용하고 있다. 협상에서도 몸짓언어의 중요성은 커지고 있다. 상대방과의 소통을 주도하고 원하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몸짓언어를 읽고 의도를 예측하는 능력이 갈수록 강조되고 있다.
고객의 몸짓언어에 대한 분석을 마케팅에 활용하는 기업도 늘고 있다. 쇼핑은 이성적 판단보다는 충동적인 감정이나 정서에 의해 유도되기 쉽다. 우울할 때 쇼핑 욕구를 더 강하게 느끼는 것이 바로 그 예다. 기업들은 고객의 몸짓언어를 통해 감정 상태를 분석하고 이를 판매 전략에 활용한다. 프랑스의 한 서점은 비디오를 통해 고객의 움직임과 놀람, 불만, 혼란, 주저 등 다양한 얼굴 표정을 분석한 다음 점원으로 하여금 맞춤형으로 대응하게 함으로써 매출을 늘렸다. 열화상 카메라를 통해 고객의 심장박동을 분석한다거나 뇌의 활동, 눈의 움직임 등을 추적해 활용하는 기업도 증가하고 있다. 모바일과 인터넷 시대에 오프라인 기업이 생존 경쟁의 활로를 개척하기 위한 방편으로 몸짓언어를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일반화의 오류'에 빠지지 말아야
상대방의 몸짓언어를 정확하게 읽을 수 있는 ‘눈치 빠른’ 사람이 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우선, 몸짓언어를 쓰는 방식과 횟수가 문화권에 따라 다르다. 라틴아메리카와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그리스 등 남부 유럽에서는 풍부한 표정과 다소 과장된 제스처가 발달했다. 반면, 러시아와 북유럽 국가에서는 몸짓언어를 덜 쓰는 경향이 있다. 기후가 인간의 감정 표현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영국에서는 과장된 몸짓을 별로 사용하지 않는데 이는 17세기 청교도 혁명 때부터 유래했다고 한다.
둘째, 동일한 몸짓언어가 문화권에 따라 상이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예컨대, 대부분의 문화권에서 고개를 상하로 끄덕이면 동의를, 양옆으로 흔들면 반대를 의미한다. 그러나 인디언, 네팔인, 스리랑카인, 에스키모인이 고개를 상하로 끄덕이면 부정을 뜻한다.
셋째, 상대방을 속이는 몸짓언어도 있다. 상대방을 혼란에 빠뜨리기 위해 일부러 가장하거나 사전에 연습해 사용하는 경우다. 그러나 의도적 몸짓언어를 오래 지속하기는 힘들다. 몸짓언어를 정확하게 읽기 위해서는 평상시 몸짓언어를 장시간 관찰해야 하는 이유다.
마지막으로 ‘일반화의 오류’에 빠져서도 안 된다. 예컨대, 눈을 많이 깜박이거나 먼 곳을 쳐다보면 거짓말하고 있다고 속단하는 식이다. 이럴 때는 얼굴 표정, 입술 근육의 움직임, 이마의 찡그림 등 부수적인 몸짓언어를 동시에 관찰하고 분석해야 한다. 또 한 발자국 물러나서 제3의 귀와 눈으로 듣고 볼 수 있는 냉정함과 초연함도 필요하다.
박희권 < 글로벌리스트·한국외국어대 석좌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