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경의 컬처 insight]'집방'에 담긴 꿈과 욕망

입력 2019-09-06 12:52
수정 2019-09-06 12:54

방송을 보다 보면, 하나의 단어로 단정짓기 어려운 복잡미묘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순식간에 시선을 빼앗겨 감탄을 쏟아내다가도, 왠지 모르게 허탈함이 밀려온다. 의뢰인이 살 집을 대신 알아봐주는 MBC 예능 ‘구해줘 홈즈’ 얘기다. ‘구해줘 홈즈’엔 화려한 집부터 숲 근처 집 등 다양한 공간들이 소개된다. 이를 보는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느낌을 받을 것 같다. 꿈과 현실 사이, 욕망과 체념 사이 어딘가에 멈춰선 감정 말이다.

‘구해줘 홈즈’와 같은 ‘집방’은 이렇듯 꿈과 욕망의 한 지점을 툭 건드린다. 여기서 ‘욕망’은 단순히 비싼 집에 살아보고 싶다는 걸 의미하는 게 아니다. 몸과 마음이 편히 쉴 수 있는 안락한 공간을 갖고 싶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에 가깝다. 그러나 현실에선 천정부지로 치솟는 집값 때문에 이를 충족하며 살기 어렵다. 대중들은 판타지가 돼 버린 욕망을 집방을 통해 작게나마 해소하고 있는 건 아닐까.

이를 자극하듯 집방들이 최근 잇달아 나오고 있다. EBS ‘건축탐구-집’, TV조선 ‘이사야사’ 등이다. ‘구해줘 홈즈’가 누군가의 집을 구해준다는 설정이라면, ‘건축탐구-집’은 직접 지은 집, 나무나 한옥 집 등 집과 공간에 대한 다양한 의미를 담는다. ‘이사야사’는 한 인물을 설정해 그가 살았던 집들을 차례대로 찾아간다.

집을 다루는 방송은 이전에도 존재했다. 2000년대 초반 MBC ‘일밤-러브하우스’가 대표적이다. 어려운 형편의 가정을 찾아가 대대적으로 집을 고쳐주는 방식이었다. 이 또한 많은 인기를 누렸지만, 공익적 성격이 강했다. 개인적인 공간에 대한 욕구와는 살짝 동떨어져 있었던 탓에, 전반적인 집방 열풍으로 확산되지는 못했다.


요즘 집방은 이런 욕망을 직접적으로 파고든다. 평소 접하기 힘든 펜트하우스가 나오는가 하면, 제주도 바닷가 주변의 아름다운 집이 나오기도 한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화려함만을 내세우지 않는다. 혼자 사는 사람을 위한 원룸, 자금이 부족한 사람을 위한 저렴한 전셋집 등도 소개한다.

유용한 정보까지 갖추면서 집방은 더욱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검색어만 봐도 알 수 있다. 눈에 띄는 집들은 방영과 동시에 금방 검색어 상위권에 오른다. 허위매물 여부 등 논란이 일어나기도 했지만, 대중들의 시선은 여전히 집방에 머물고 있다.

집방의 인기는 밥을 먹는 먹방, 국내외 곳곳을 누비는 여행 방송에 비해 어쩌면 더 오래 지속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 방송들은 모두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을 자극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더 좋은 걸 먹고 싶고, 더 좋은 곳에 가보고 싶은 욕망 말이다. 하지만 미세하게 다른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먹방이나 여행 방송을 보다보면 가까운 미래에 나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마음을 크게 먹고 돈을 쓰면 나도 언젠가 잘 먹고, 재미있게 놀러 다닐 수 있으니까. 그러나 집은 다르다. TV속 멋진 집을 보고 있노라면 ‘내가 언제 저런 집에 살아보겠어’라는 한숨이 함께 배어나온다. 그러나 쉽게 가질 수 없는 것은 더 간절히 원하게 되는 법이지 않은가. 집 자체가 판타지가 돼 버린 이 시대, 씁쓸하게도 집방은 이런 이유로 더 강력하고 끈질기게 이어질 것 같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