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추석은 OO이다"

입력 2019-09-05 17:56
수정 2019-09-06 00:05
추석만큼 외국인들이 이해하기 힘든 명절이 있을까? 올해도 길게는 열 시간이 넘는 ‘전쟁’을 치르면서도 수천만 명이 고향을 찾을 것으로 보인다. 일상에 지친 한국인들은 추석 때 가족과 고향의 품에서 기력을 회복하고 마음을 추스르곤 한다. 그래서 연초에 새 달력을 펼치면 가장 먼저 추석 연휴부터 확인하고 여름 휴가철이 지나면 고향 방문 계획을 세운다.

추석은 현대인에게 의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치유와 위로의 시간이다. 최근에는 경조사 외에 일가친척을 만날 기회가 흔치 않다. 추석은 혈연공동체를 유지하는 중요한 계기일 뿐 아니라 민족의 정체성을 확인함으로써 대한민국이라는 민족국가를 지탱하는 동력이 된다.

명절 기간이 지닌 정치적인 의미도 빼놓을 수 없다. 추석 민심을 잡지 못하면 천하를 얻을 수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한국인은 추석날 정치 현안에 관한 대화를 나누고 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여론이 형성된다. 추석 밥상머리 민심은 좀처럼 변하지 않는 경향을 보인다. 추석은 무서운 공론의 장인 셈이다.

추석은 결실과 나눔이다. 추석을 앞두고 주고받는 선물은 대부분 먹거리다. 고도로 산업화된 지금도 민족 최대 명절이 1차 산업인 농업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 새삼 놀랍다. ‘농자천하지대본’이라는 말처럼 과거에는 농업이 국가 기간산업이었으나 산업화에 따른 이농과 수입 개방으로 갈수록 위축됐다.

그러나 최근 미·중 무역분쟁, 수출규제를 둘러싼 한·일 갈등을 지켜보며 식량이 무역전쟁의 무기가 되면 어찌 될까 하는 생각에 모골이 송연해진다. 이미 밥상 음식의 60% 이상을 나라 바깥에서 의존하는 우리 처지에 먹거리 전쟁의 충격은 국민 생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농업을 육성하는 것은 국가안보를 튼튼히 하는 일이자 국가의 백년지대계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농업의 가치를 다시금 확인하게 되는 추석 때 기억했으면 하는 것이 또 있다. 바로 농부의 땀방울이다. 부족함 없는 풍요로운 세상이라서 그런지 모르나 먹거리의 소중함과 농부의 땀방울을 떠올리는 경우는 드물다. 요즘 TV에서 대세가 된 먹방 프로그램에서도 메뉴와 감상, 요리사와 요리법 등이 화제가 될 뿐 농산물과 농부의 수고는 뒷전일 때가 많다.

농부가 땀과 정성으로 숱한 어려움을 이겨낸 결실이 추석 밥상이다. 모든 상품에 만든 이의 공이 담기지 않은 것은 없겠지만 추석만큼은 농부의 땀방울을 느끼고 노고를 기렸으면 한다. 추석이 원초적인 고마움을 나누는 따뜻한 감사와 격려의 소중한 시간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