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국민연금 등 공적 연기금이 투자기업을 상대로 배당 확대나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활동을 벌일 때 상세 내용을 즉각 공시하지 않아도 된다. 연기금이 이런 주주활동을 벌여 단기 매매차익을 얻은 경우 반환 의무를 면제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연기금의 기업 경영참여 규제를 완화하는 것으로 상장사에 대한 연기금의 입김이 더 세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금융위원회는 기관투자가의 대량보유 보고제도(일명 5%룰)를 개선하는 내용의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안을 마련해 입법예고한다고 5일 발표했다. 상장사 지분을 5% 이상 취득할 때 보고를 의무화하는 5%룰은 대주주의 지분 변동 정보를 시장에 공개해 공정성과 투명성을 확보하고 상장사가 적대적 인수합병(M&A) 등에 노출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도입됐다. 하지만 스튜어드십코드(수탁자책임 원칙)를 채택한 기관투자가를 중심으로 주주참여 활동이 점차 늘면서 5%룰을 손질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에 금융위는 기존 경영권 영향 목적에 해당됐던 정관변경, 배당, 임원보수 등 관련 주주 활동을 떼어내 경영권 영향 목적이 없는 일반투자 활동으로 분류했다. 경영권 영향 목적 활동은 임원 선임·해임이나 합병 관련 주주제안 등으로 국한했다.
특히 연기금에 대해선 5%룰에 따른 보고의무를 대폭 완화했다. 경영권 영향 목적의 경우 보고자 및 특별관계자별 보유 또는 변동주식 종류·수 등만 취득이나 변경 후 5일 내 약식보고하도록 했다. 일반투자 활동에 해당할 경우엔 월별로 약식보고만 하면 된다.
이런 사항은 경영권 영향 목적으로 상장사 지분을 10% 이상 보유한 연기금이 6개월 이내에 주식을 팔아치워 단기매매차익을 실현한 경우 이를 기업에 반환하도록 한 제도(일명 10%룰)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10%룰은 지분율 10% 이상 주주를 ‘내부자’로 보고 부당한 미공개정보 이용 유인을 차단하기 위해 도입됐다.
그런데 5%룰 개정으로 지배구조·배당 등 관련 주주활동이 경영권 영향 목적이 없는 일반투자 활동으로 분류됨에 따라 10%룰 적용범위도 대폭 축소됐다. 김정각 금융위 자본시장정책관은 “투자자가 주주활동을 통해 미공개정보에 접근해 단기매매차익을 얻는 행태를 방지하기 위한 보완장치를 마련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상장사들 사이에선 이번 5%·10%룰 완화로 연기금의 기업 경영에 대한 간섭이 더욱 심해질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한 기업 임원은 “과다한 배당 요구는 회사 존립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인데 이를 일괄해 경영권 영향 목적이 없다고 분류한 것은 문제”라고 말했다. 상장사 관련 단체 등에선 “연기금의 단기매매차익 반환의무를 면제하면 연기금에서 주주제안이 나올 때마다 주가가 춤을 춰 자칫 상장사가 연기금의 ‘봉’으로 전락할지 모른다”고 반발했다.
■5%룰
경영권에 영향을 주기 위해 상장기업의 의결권 있는 주식을 5% 이상 취득하게 된 경우와 취득 이후 지분이 1% 이상 변동된 경우 그 내용을 5일 이내에 공시하도록 의무화하는 제도. 적대적 인수합병(M&A) 방어를 위해 1991년 도입됐다.
오형주/하수정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