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제품 불매운동이 확산되면서 국산 제품이 재조명되고 있다. 식음료, 패션, 제약업계는 불매운동의 영향을 크게 받는 분야다. 관세청 수출입 무역통계 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7월 일본 맥주 수입액은 6월 대비 45.1% 감소했다. 불매운동 1순위로 지목된 SPA 브랜드 유니클로는 7월 매출이 70% 급감하며 직격탄을 맞았다. 근육통, 신경통에 가장 먼저 찾게 되는 파스도 예외는 아니다. 일본 여행 시 구매해야 하는 필수품으로 유명한 동전파스 ‘로이히쓰보코’와 ‘샤론파스’가 불매 제품으로 지목되면서 국산 파스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다.
日 대항해 개발된 신신파스
국산 파스는 일본 파스를 대체하기 위해 개발됐다. 국산 파스는 6·25전쟁 직후부터 생산됐다. 1950년대 한국 국민은 전쟁 여파로 궁핍한 생활을 이어갔다. 육체노동으로 인한 관절염 및 신경통은 ‘국민병’이었다. 당시 독점 판매되던 일본 파스는 너무 비싼 탓에 많은 사람은 통증을 참은 채로 노동을 계속해야 했다. 이영수 신신제약 회장은 1959년 제약사를 설립하고 “일본 제품보다 값싸고 질 좋은 파스를 만들자”고 결심했다. 그렇게 탄생한 제품이 국내 최초 국산 파스인 ‘신신파스’다.
신신제약의 출발은 순조롭지 못했다. 국내에는 이미 일본 밀수 제품이 시장을 주도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가격은 비싸지만 품질이 좋다는 이유로 일제를 선호했다. 신신파스는 일본 제품 사이에서 고전할 수밖에 없었다. 이 회장은 “국민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는 국산 제품을 내놓겠다는 초심을 잃지 말자”며 직원들을 일으켜 세웠다. 시장 반응이 좋지 않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제품을 개선하기 위해 연구개발(R&D)을 계속했다.
1960년대 초 정부는 국내 산업을 부흥시키기 위해 밀수품 단속을 강력히 시행했다. 과거 일제시대부터 국내 파스 시장을 휩쓸었던 샤론파스가 5대 밀수 의약품으로 지정됐다. 새로운 활로를 맞은 신신제약은 대량 생산을 시작했다. 새로 개발한 기술을 접목해 품질을 개선한 제품이 나오면서 신신파스는 서서히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주문량은 파스류와 반창고의 주원료인 면사 공급이 부족할 만큼 폭발적이었다. 공급 부족 현상은 1970년대까지 이어졌다. ‘국민 파스’로 인정받은 신신파스는 1970년대 말부터 자체 기술만으로 제작된 파스를 선보이면서 업계 리더로 자리매김했다.
통증 완화에서 치료제로 진화
신신제약은 국산 파스 시장을 처음 개척했다. 신신파스는 한때 국내 시장의 90%를 장악하기도 했다. 신신파스 역사가 국내 파스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신제약은 시대에 따른 소비자 요구를 파악해 끊임없이 다양한 제품을 개발했다. 붙이는 형태뿐만 아니라 바르는 액체형, 뿌리는 스프레이형 등으로 제품 다변화에도 나섰다.
신신제약은 창립 초기 ‘신신파스’와 ‘신신반창고’ ‘신신티눈고’ 등 3개 품목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발매 초기 신신파스는 가로 6.2㎝, 세로 4.1㎝의 크기가 작은 파스 형태로 6장 포장 단위였다. 1967년 뿌리는 에어졸 형태의 ‘에어 신신파스’, 1971년 피부에 바르는 ‘신신 물파스’를 출시하면서 제품군을 넓혔다. 부착형 파스도 내구성을 강화하고 원단을 개선했다. 1971년 ‘신신파스 에이’, 1989년 ‘신신파스 에스’에 이어 2007년에는 ‘신신파스 아렉스’를 선보였다.
1970년대 출시된 파스는 통증 부위에 자극을 주면서 통증을 완화하는 것이 주목적이었다. 1990년대에는 관절염 치료제 케토프로펜, 피록시캄 등을 첨가한 제품을 출시했다. 이런 제품들은 통증을 치료하는 역할까지 하면서 파스 시장 규모를 확대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2000년대 이후에는 습포제와 밀착포를 합친 일체형 습포제 및 냉온 찜질 효과가 있는 파스가 등장했다. 최근 배우 이시언을 광고 모델로 발탁하면서 대중에게 친숙해진 ‘신신파스 아렉스’는 냉파스와 온파스의 기능을 하나로 합친 것이 특징이다. 파스는 일반적으로 부착형, 스프레이형, 외용액으로 분류된다. 또 성분에 따라서도 구분되기 때문에 종류가 많다. 신신제약은 자체 생산 공정을 갖추고 있어 국내 제조사 중 가장 많은 제품 라인업을 보유하고 있다. 신신파스 내에서 대부분의 파스 종류를 경험할 수 있어 선택의 폭이 넓다.
환갑 맞은 신신제약, 신공장으로 승부수
신신제약은 올해 창립 60주년을 맞이했다. 1971년 국내 최초로 의약품 수출을 시작으로 1983년 수출 100만달러를 달성했다. 2008년 500만달러 수출탑에 이어 올해 1000만달러 수출탑을 수상할 예정이다. 국내 제약업체의 위상을 높이기 위한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신신제약이 60년간 ‘파스 명가(名家)’ 타이틀을 이어갈 수 있었던 비결은 묵묵히 제품 및 기술 개발에 집중하면서 R&D 경쟁력을 키운 데 있다.
신신제약은 경피형 약물 전달 시스템(TDDS)의 핵심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이 기술은 다양한 제품군에 적용이 가능하다. 천연고무 기반의 파스 제제기술은 친환경 제조 공정 및 우수한 피부 안전성을 자랑한다. 냉온 이중 찜질 파스 제제기술은 빠르고 효과적으로 통증을 완화해준다. ‘60년 파스 외길’을 걸으며 쌓은 전문성과 탄탄한 기술력을 기반으로 제작된 신신파스는 소비자에게도 신뢰를 얻고 있다. 신신파스의 주력 제품 ‘신신파스 아렉스’ 매출은 2018년 100억원대로 증가했고 최근 2년 연속 소비자 브랜드 대상을 차지했다.
신신제약은 올 하반기부터 세종 신공장을 본격 가동한다. 기존 안산에 있던 공장을 세종시로 이전해 스마트 신공장을 완공했다. 신흥 ‘메디신밸리’로 불리는 서울 마곡지구에 R&D센터도 건립하고 있다. 신신제약은 신공장과 R&D센터를 통해 고령화 시대에 발맞춰 노년의 삶의 질을 높이는 패치형 의약품 개발을 새로운 목표로 세웠다. 기존 일반의약품(OTC) 사업에 국한하지 않고 수면 유도, 요실금, 천식, 전립선 비대증 패치 제품과 같은 전문의약품(ETC)도 개발 중이다. 고부가가치 패치제 시장을 핵심 사업으로 키워 글로벌 헬스케어 기업으로 도약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병기 신신제약 대표는 “창업 초기의 사명과 정체성을 지키고 오픈 이노베이션(개방형 혁신)을 통해 한 단계 도약함으로써 질 좋고 값싼 파스에만 머물지 않고 복용이 편리한 의약품 개발로 건강하고 행복한 노년의 삶을 제공하겠다”며 “파스와 패치를 넘어 세계 최고 품질의 의약품 생산으로 신뢰받는 글로벌 헬스케어 기업으로 만들어가겠다”고 말했다.
전예진 기자 ac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