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은 올 들어 저물가가 지속되는 데는 정부의 공공요금 억제 정책도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고 보고 있다. 정부가 ‘전기요금 인상 없는 탈(脫)원전’ ‘문재인 케어’ 등의 공약을 지키기 위해 공공기관을 압박해 요금을 누르고 있다는 얘기다. 당장 물가를 낮추면 이용자들은 이익을 보겠지만 그만큼 공공기관들은 손실을 안게 된다. 결국 이용자 대신 미래 세대가 세금으로 부담해야 할 상황이다.
3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사상 처음으로 마이너스(-0.04%)를 기록한 데에는 정부의 복지 정책이 0.2%포인트만큼 물가상승률을 하락시킨 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조사됐다.
상품에 대해 제 값을 받지 못하는 공공기관들의 부실은 커지고 있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한국전력 국민건강보험공단 LH(한국토지주택공사) 등 정부가 중점 관리하는 39개 주요 공공기관은 올해 1조6000억원의 당기순손실을 낼 것으로 전망됐다. 한전이 대표적 사례다. 값싼 원전으로 만든 전기 대신 액화천연가스(LNG)로 생산한 전력의 구입 비중을 늘리고 있지만 전기요금은 올리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여름철 누진제 완화를 통해 전기요금을 더 할인해주고 있다. 건보공단은 건보 적용 대상을 늘리는 방식으로 의료비를 대폭 깎아줬다. 이 때문에 2017년 4000억원의 순이익을 올린 건보공단은 올해 5조원의 순손실을 낼 것으로 추정된다.
유류세 인하도 같은 맥락이다. 정부는 지난해 11월부터 지난달까지 유류세를 인하하는 식으로 기름값을 낮췄고 이는 결국 재정 부담으로 돌아오게 됐다.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당장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공공요금 인상을 억누르는 건 미래 세대에 빚을 전가하는 일”이라며 “재정을 악화시키고 향후 가격을 현실화할 때 충격이 더 커지는 부작용도 초래한다”고 꼬집었다. 이어 그는 “가격을 실질적으로 부담하는 사람과 혜택을 받는 사람이 달라 ‘사용자 비용 부담 원칙’에도 어긋난다”고 덧붙였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