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종 캔햄' 동원 리챔…'짜지 않은 맛'에 1조어치 팔렸다

입력 2019-09-03 17:43
수정 2019-09-04 02:25
1980년대까지만 해도 깡통햄은 귀한 먹거리였다. 부잣집 아이들의 도시락에서나 볼 수 있었다. 짭조름한 네모 햄 한 조각에 밥 한 숟갈.

먹을 게 흔한 시대가 됐지만 사람들은 깡통햄에 대한 기억을 갖고 있다. 깡통햄은 진화를 거듭해 지금은 고급 캔햄으로 불린다. 반찬거리로, 명절 선물로 여전히 인기가 있다.

동원F&B는 2003년 해외 브랜드가 장악하고 있던 캔햄 시장에 뛰어들었다. ‘한국 사람 체질에 맞는 건강한 캔햄’을 내놓는 게 목표였다. 돼지 지방을 섞어 쓰고 나트륨 함량을 높인 기존 제품과 달리 ‘건강’ 콘셉트의 제품을 개발해 선보였다. ‘짜지 않아 건강한 햄’이란 모토로 만든 토종 캔햄 리챔이 출시 15년을 맞았다. 최근 리챔 누적 판매액은 1조원을 넘어섰다.


짠맛 줄이고 질 좋은 고기 사용

동원F&B 리챔이 1조원어치가 팔린 첫 번째 비결은 건강이라는 콘셉트에 있었다. 리챔은 짠맛이 주류이던 기존 캔햄 시장에 국내 최초로 저염 제품을 내놨다. 점유율 1위 제품보다 국내 출시가 16년이나 늦었던 만큼 차별화를 통해 시장을 뚫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동원은 출시 당시 퍼지고 있던 웰빙 트렌드에 주목했다. 이 콘셉트에 맞게 나트륨 함량을 낮췄다. 리챔 100g당 들어 있는 나트륨 함량은 670㎎ 정도. 1위 제품 나트륨 함량(1100㎎)의 60% 수준이다.

다음은 품질. 캔햄에 사용하는 돼지고기 품질도 높였다. 리챔의 브랜드명은 ‘리치(rich)’와 ‘햄(ham)’을 합쳐 만들었다. 이름대로 돼지고기 함량을 90% 이상으로 유지하고 있다. 여기에 돼지 살코기의 여러 부위를 섞어 쓰는 다른 제품과 다르게 돼지 앞다리살을 사용한다. 동원F&B 관계자는 “돼지 앞다리는 뒷다리에 비해 마블링이 우수하다”며 “부드러운 맛을 위해 앞다리 부위만을 고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매운 맛 입히고 소고기도 넣어

시대에 따라 변하는 입맛에 맞춰 새로운 맛을 내는 다양한 시도도 했다. 2016년 출시한 ‘핫치폴레’는 업계 최초로 내놓은 매운맛 캔햄이다. 훈연 건조한 멕시코 고추인 치폴레 가루를 넣었다. 치폴레의 매콤한 맛으로 햄의 느끼함을 잡고, 고소한 맛을 내는 체다치즈를 더했다. 젊은 층의 인기를 끌었다. 제품을 다양화하기 위해 동원은 햄에 흔히 들어가는 첨가물 6종을 넣지 않고 만든 ‘자연레시피 리챔’도 내놨다. 어린아이를 둔 젊은 부모들을 겨냥한 제품이었다. 또 생양파를 넣은 ‘리챔 어니언’, 각종 숙성육을 사용한 ‘리챔 와인숙성’과 ‘리챔 녹차숙성’ 등 현재 단종된 제품들도 후발주자로서 시장을 넓히기 위해 연구개발한 결과다.

최근에는 소고기를 재료로 쓴 ‘리챔 골드마블’도 내놨다. 햄 함량의 10% 이상을 소고기로 채웠다. 동원 관계자는 “다양해진 육류 소비 트렌드에 맞춰 다양한 상품을 내놓는 게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동원은 리챔 골드마블을 이번 추석 선물세트로도 내놨다.

리챔은 이런 다양한 맛으로 시장 점유율을 20%까지 끌어올렸다. 캔햄 시장 2위다. 토종 브랜드로는 1위를 지키고 있지만 외국 브랜드의 짠 맛에 익숙해진 소비자가 많아 점유율을 급속히 높이는 것은 쉽지 않다고 업계는 보고 있다. 이와 관련, 동원F&B 관계자는 “같은 캔햄이라도 건강에 신경 쓰며 다양한 맛을 원하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며 “저염 및 프리미엄 제품을 꾸준히 개발해 기존 시장에 없던 수요를 계속 창출하겠다”고 말했다. 올해 매출은 10년 전보다 세 배, 지난해보다 10% 이상 늘어난 1800억원 돌파를 기대하고 있다.

국내 가공햄 시장은 1인 가구가 늘고 식습관이 서구화되면서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국내 햄·소시지 소매시장 규모는 2017년 기준 1조5107억원으로 전체 식육가공품 생산액(5조4225억원)의 30.3%를 차지했다.

안효주 기자 j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