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외출 전 거울 앞에 서서 잊지 않고 하는 말이 있다.
"뚱? 날?"
거울 속 내 패션이 괜찮은지 별로인지 확신이 안 설 때 아이들에게 '엄마 오늘 뚱뚱해 보여? 날씬해 보여?'라고 묻는 줄임말이다.
냉혹한 아이들은 거의 매번 "뚱"이라고 답하지만 가끔 잘 모르겠다는 투로 말을 흐리며 "보통"이라고 할 때는 '자기들 보기에 꽤 괜찮다'라는 뜻이다.
하지만 가끔 정말 별로라는 표정을 직면할 때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상해서 "네 패션도 진짜 별로야"라고 쏘아준다. 무조건 검은색 상의와 검은색 줄무늬 반바지만 입으면 예쁘다고 생각하는 첫째와 너줄너줄 길고 치렁치렁한 건 공주같다고 여기는 둘째 패션에 가끔 머리가 아프다. 이제 내가 입히고 싶어 하는 옷을 입어주는 시기는 영영 지나가 버린 듯해 아쉬운 건 덤이다.
인형놀이하듯 내 취향대로 아이 옷을 코디해 입힐 땐 그게 얼마나 편한 것이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이제는 아이들과 옷 쇼핑하러 가면 '그건 이래서 안 돼', '저래서 안돼', '딴 거 골라봐' 실랑이 벌이느라 체력 소모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내 옷을 사는 건 마음에 쏙 들기라도 하지 아이 옷을 산다는 건 내 마음에 안 드는 데 내 지갑에서 돈까지 나간다는 단점이 있다.
'윗옷은 괜찮은데 치마가 별로야', '옷은 괜찮은데 화장을 안 해서 얼굴이 초라해 보여' 등 내 행색을 지적하는 아이들은 그야말로 모르는 게 없는(?) 척척박사다.
언제였던가. 전문가 뺨치는 7세 아이의 다이어트 이론에 혀를 내두른 적이 있다.
"고기도 가끔 먹어. 단백질이래. 설탕이나 올리브유는 아주 조금만 먹어. 간식은 딸기 말린 것등 말린 과일류를 먹는 게 좋대. 말린 과일이 가장 좋지만 기간을 정해놓고 금요일에만 과자를 먹는 것도 괜찮아. 운동할 땐 가벼운 운동에서 무거운 운동 순서로 하는데 작은 운동은 달리기, 줄넘기, 축구같은 공놀이, 무거운 운동은 큰 역도랑 작은 역도를 하면 돼."
헉 이런 거 어디서 들은 거니?
집안에 꼬마 전문가가 있었는데 괜히 헬스장 다니고 있었나 싶어 웃음이 빵 터졌다.
아이들은 "같이 놀자. 빨리 일어나"라면서 가만히 누워있는 엄마를 두고 보지 못하는데 나는 쉬지 않고 뛰어노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체력이 고갈된다고 느낄 때가 있다.
'이렇게 같이 놀자고 보채는 것도 지금 한때일 텐데' 싶으면서도 그냥 주말엔 마냥 쉬고 싶고 자고 싶은 내 마음은 또 어쩌란 말이냐.
아이들은 주말마다 되풀이되는 '나 잠 조금만 잘게' 이 말을 가장 싫어한다. 엄마 잠들까 무서워 옆을 떠나지 못하고 "자꾸 이러면 나 그냥 잠들어 버릴 거야" 엄포에 "절대 안 된다"며 안마를 해주는 등 호들갑을 떤다.
'뚱날'보다 중요한 건강을 위해 오늘부터라도 다이어트 전문가(?) 모시고 '가벼운 운동→무거운 운동' 좀 실천해야겠다. 피곤하다 힘들다 핑계 대느라 침대에 붙어지내는 지금 이 시간에도 아이들은 무섭게 자라고 나는 늙어가고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