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무불이행(디폴트) 위기에 몰린 아르헨티나 정부가 외화 통제라는 ‘극약 처방’을 내놨다. 아르헨티나는 다음달 대통령 선거에서 좌파 포퓰리즘(대중인기 영합주의) 후보의 집권 가능성이 커지면서 통화가치와 주가가 폭락하고 국가 신용등급은 부도 직전 등급으로 떨어졌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1일(현지시간) 관보에 외환시장 변동성 축소 등을 위한 긴급조치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아르헨티나 기업들은 2일부터 연말까지 미국 달러화 등 외화를 사서 외국에 보내려면 중앙은행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기업들은 보유 목적으로 외화를 사들일 수도 없다.
아르헨티나는 2011년 포퓰리즘 좌파 정부인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전 대통령 집권 당시 페소화 가치 하락 등을 막기 위해 기업과 개인의 달러 매입을 제한한 사례가 있다. 이후 2015년 대통령 선거에서 마크리 현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그해 12월 자본 통제를 풀었다가 이번에 약 4년 만에 다시 자본 통제에 나선 것이다.
아르헨티나가 최근 디폴트 위기까지 내몰린 것은 정치적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어서다. 지난달 11일 아르헨티나 대통령 예비선거에서 좌파 후보인 알베르토 페르난데스는 현 마크리 대통령을 15%포인트 이상 앞섰다. 이후 경제 위기가 심화할 것이란 우려가 커지며 페소화 가치와 주가는 폭락세를 이어갔다.
페소화 환율은 지난달 9일 달러 대비 45.31페소였으나 예비선거 뒤 14일에는 60페소 수준까지 치솟았고, 이후에도 50페소 후반대를 유지하고 있다. 페소화 가치가 그만큼 떨어졌다는 의미다. 지난달 30일 페소화 환율은 달러당 59.50페소로 마감했다. 아르헨티나 증시 메르발지수도 9일 이후 급락세를 보이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메르발지수가 지난달 고점 대비 46%가량 떨어졌다고 분석했다.
아르헨티나의 총 외채는 2000억달러를 웃돈다. 이 가운데 절반가량인 1010억달러에 대해 아르헨티나 정부는 상환을 미루겠다고 최근 일방적으로 발표했다. 외국의 채권기관 대다수는 아직 이에 대해 반응을 내놓지 않고 있다. 다만 570억달러의 구제금융을 제공키로 하고 440억달러를 집행한 IMF만 오는 15일 이후 일정을 논의키로 했다.
아르헨티나가 채무 상환 연장을 발표하자 글로벌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아르헨티나 국가신용등급을 기존 B-에서 SD(선택적 디폴트)로 내렸다. SD는 국가 채무 가운데 일부를 갚지 못할 때 적용하는 등급이다. D(디폴트)에 이어 두 번째로 낮은 단계다.
앞서 블룸버그통신은 “신용부도스와프(CDS)가 앞으로 5년 이내 아르헨티나의 디폴트 가능성을 90%로 예상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IMF는 아르헨티나 정부의 긴급조치 발표 후 “아르헨티나는 환율 안정과 저축자 보호를 위해 자본 관리책을 발표했다”며 “우리는 아르헨티나 정부와 긴밀한 접촉을 유지하고 어려운 시기를 함께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아르헨티나의 경제 위기가 커질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한다. 좌파 포퓰리즘 정부의 집권 가능성이 커 외국 자본 이탈이 불가피할 것이란 점에서다. 아르헨티나에 받을 돈이 있는 외국 채권기관들이 아르헨티나 정부가 기대하고 있는 채무 재조정에도 응하지 않을 우려가 있다.
아르헨티나에 좌파 정부가 다시 들어설 경우 주변 중남미 국가에도 정치·경제적 불확실성이 전이될 가능성이 있다. 당장 아르헨티나를 비롯해 브라질·우루과이·파라과이 등 4개국이 포함된 남미공동시장(메르코수르)이 유럽연합(EU)과 지난 6월 타결한 자유무역협정(FTA)의 미래가 불투명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협정을 지지하는 마크리 대통령과 달리 페르난데스 후보는 협정 체결에 반대 입장을 밝혀왔기 때문이다.
아르헨티나와 이웃 국가인 브라질의 관계도 틀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안정락 기자 jr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