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무두절' 예찬

입력 2019-09-01 17:41
수정 2019-09-02 00:23
“오늘은 팀장 연차휴가, 우리 팀 분위기 최상이다. 표정도 밝고 의사소통도 잘된다. 인상 쓰는 사람이 없다. 업무 효율까지 높아진다. 가끔씩, 아니 자주 팀장이 자리를 비우는 게 우리 팀 성과에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젊은 직장인이 블로그에 올린 ‘무두절(無頭節·상사가 자리를 비운 날) 단상’이다.

LG전자는 2016년부터 ‘팀장 없는 날’을 운영해왔다. 직원들의 호응이 높자 지난 7월부터는 적용 범위를 임원까지로 넓혀 조직 책임자가 월 1회 회사에 출근하지 않는 ‘리더 없는 날’을 도입했다. 임원이나 팀장이 한 달에 한 번 무조건 쉬고, 휴가일을 한 달 전 팀원들에게 알리도록 했다. 이왕이면 팀별 정기회의가 있는 요일을 택하도록 했다.

직원들은 환호했다. 무엇보다 ‘회의 부담’이 줄어들었다. 이 회사가 2년 전 ‘월요 회의’ 준비 때문에 주말에 출근하는 걸 막기 위해 월요일을 ‘회의 없는 날’로 정했을 때보다 더 반가워했다. 주중에도 여유가 생겼기 때문이다. 상사 눈치 보지 않고 자유롭게 근무할 수 있는 데다 스스로 업무를 주도하는 ‘리더 연습’까지 해 볼 수 있다.

임원과 팀장들도 이를 반기고 있다. 업무나 책임감 때문에 평소 잘 쉬지 못하다가 매월 재충전 시간을 가질 수 있고, 일에서 잠시 벗어나 가족과 편안한 시간을 보낼 수 있으니 일거양득이다. 배우자들의 만족도도 높다.

보안기업인 에스원은 2016년부터 전국의 지사장들이 한꺼번에 휴가를 떠나는 ‘부서장 프리주(free週)’를 시행하고 있다. 보안사업 담당 지사장 100여 명이 1년에 한 번, 1주일간 동시 휴가를 떠나는 방식이다. 최근에는 지원부서까지 휴가 인원을 두 배로 늘렸다. 혹시 있을지 모르는 업무 공백은 임시 부서장 제도로 해결했다.

이 밖에 ‘2주 휴가제’로 직원들 사기를 높이는 기업, 직급이 올라갈 때마다 안식 휴가를 주는 곳 등이 늘고 있다. 무두절로 상사의 간섭이 없어지면 직원들의 자율성은 그만큼 커진다. 업무 효율성과 생산성까지 높아진다. ‘리더 없는 날’이나 ‘부서장 동시 휴가’ 등은 시대 변화를 앞당기는 촉진제라 할 수 있다.

무두절을 잘 활용하면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창의력 엔진’까지 키울 수 있다. 임직원이 쉬는 것을 ‘비용’이 아니라 ‘투자’ 개념으로 받아들이는 기업일수록 성과도 높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