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수출 규제 조치 이후 세 차례에 걸쳐 반도체 소재의 한국 수출을 허가했지만 모두 삼성전자에 들어가는 물량이었다. 삼성과 달리 SK하이닉스는 두 달 동안 물량을 확보하지 못해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1일 업계 등에 따르면 일본 경제산업성은 지난 7월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수출절차 간소화 국가)에서 제외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뒤 한국으로 들어가는 반도체 소재 수출을 세 차례 허가했다. 지난달 7일과 19일 각각 EUV(극자외선)용 포토레지스트(감광액) 수출을 허용했다. 이어 같은 달 29일에는 규제 조치 이후 처음으로 불화수소 수출을 허가했다. 한국으로 들어오는 포토레지스트와 불화수소는 모두 국내 협력사를 통해 삼성전자가 납품받는 물량이었다. 삼성전자에 이어 메모리 반도체 세계 2위인 SK하이닉스로 들어가는 소재는 없었다.
반도체업계에서는 SK하이닉스의 사업구조가 삼성전자와 달라 이런 현상이 일어난 것으로 보고 있다. 포토레지스트는 웨이퍼에 회로를 그리는 공정에 쓰이지만 일본이 규제하는 EUV용 포토레지스트는 메모리 반도체가 아니라 시스템 반도체의 EUV 공정에 필요하다. 메모리 반도체 중심인 SK하이닉스는 EUV용 포토레지스트를 확보할 필요가 없다.
또 불화수소가 필요한 메모리 반도체 부문에선 SK하이닉스 생산량이 삼성전자에 비해 적다. 일본에서 들여오는 불화수소의 양도 삼성전자가 SK하이닉스보다 훨씬 많아 수입 허가가 빨리 났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세계 D램 시장 점유율은 삼성전자가 45.7%로 SK하이닉스(28.7%)에 비해 높다. 낸드플래시 부문에선 삼성전자(34.9%)와 SK하이닉스(10.3%)의 격차가 더 크다.
삼성전자가 메모리 반도체를 비롯해 스마트폰, TV 등에서 세계 1위를 달리는 글로벌 기업이라는 상징성 때문에 일본 정부가 삼성전자 물량을 우선 배정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다만 일본이 지금처럼 반도체 소재 수출을 제한적으로 허용하면 SK하이닉스도 곧 물량을 확보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업계의 관측이다. 업계 관계자는 “SK하이닉스도 조만간 협력업체를 통해 일본산 불화수소를 납품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인설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