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만년설이 내려앉은 장엄한 코카서스 산맥을 지붕으로 삼고 아름다운 흑해와 카스피해를 품은 나라가 있다. 때 묻지 않은 청정자연과 다양한 역사가 공존하는 코카서스 3국의 진주 조지아(Georgia)다. 조지아의 수도 트빌리시(Tbilisi)는 이 신비롭고 낯선 나라의 탐험을 시작하기에 제격인 도시다. 1600년 역사의 풍파를 고스란히 간직한 구시가지의 건물들, 유럽과 아시아 그리고 구소련 시절의 문화가 혼재하는 거리, 그 사이를 유유히 흐르는 므츠바리(Mtkvari)강,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언덕 위에서 굽어보는 정교회의 찬란한 십자가까지. 보면 볼수록 빠져드는 마성의 도시, 트빌리시로 떠나보자.
다사다난한 역사를 품은 도시
코카서스의 아름다운 나라 조지아는 아직 우리에게 그루지야라는 이름으로 더 친숙하다. 그루지야는 러시아에 오랜 지배를 받았던 조지아의 러시아식 명칭이다.
최근 들어서야 공식 국가명이 영어식 발음인 조지아로 바뀌었지만 정작 이 나라의 본래 이름은 따로 있다. ‘사카르트벨로(Sakartvelo)’, 조지아 민족의 대다수를 구성하는 ‘카르트벨인의 땅’이란 의미다. 조지아 수도 트빌리시의 역사는 서기 5세기 무렵부터 시작됐다고 전해진다. 그전에는 트빌리시에서 25㎞가량 떨어진 므츠헤타(Mtskheta)가 이베리아 왕국(조지아 왕국)의 수도였다.
무려 1600년의 세월을 품은 고도(古都)지만 지나온 역사는 파란만장했다. 소아시아와 동유럽을 잇는 경계의 땅, 서구 문명과 이슬람 문명이 교차하는 곳이라는 지리적 특이성은 이 작은 나라에 축복과 동시에 저주로 작용했다.
트빌리시로 수도를 옮긴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조지아는 주변 강호들의 각축장으로 변모했다. 비잔틴, 아랍, 셀주크 튀르크, 몽골, 페르시아, 오스만 제국 등 주변 세력의 잇따른 침략이 이어졌고 18세기부터는 러시아 제국의 지배를 받았다.
<hr >러시아 대문호 푸시킨은 말했다…"트빌리시 온천보다 황홀한 곳은 없소"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독립을 선언했지만 1028일 후 또다시 구소련에 편입되고 만다. 소련이 무너진 1991년이 돼서야 조지아는 비로소 독립국이 됐다. 시가지의 중심인 자유 광장에서 트빌리시와의 첫인사를 나눈다. 광장 한가운데 솟아오른 탑 꼭대기 위풍당당한 자태를 뽐내는 동상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동상의 주인공은 조지아의 수호 성인 성 게오르기우스(Saint Georgios)로, 악한 용을 무찌르는 전설 속 모습을 황금빛 조각상으로 재현해 놓았다. 자유 광장이라는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 이곳은 자유를 향한 조지아인들의 투쟁을 고스란히 간직한 장소다. 구소련으로부터의 독립을 제창한 수많은 저항운동과 2003년 조지아를 통치했던 셰바르드나제(Shevardnadze)의 부패 정권에 대항하는 장미 혁명(Rose Revolution)에 이르기까지 역사를 뒤바꾸고자 한 굵직한 사건들이 이곳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트빌리시의 진짜 얼굴을 찾아서
자유 광장을 중심으로 뻗어 있는 루스타벨리와 코테 압카지 거리를 따라 구시가지로 향한다. 고전주의, 아르누보, 소비에트 양식의 건물들이 뒤섞인 거리를 걸으며 도시가 지나온 역사의 페이지를 한 장 한 장 거꾸로 넘긴다. 아기자기한 숍과 세련된 카페들로 꾸며진 구간을 지나 구불구불한 골목길로 들어서니 조금 전과는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산 비탈길에 대롱대롱 매달린 낡은 가옥들, 세월의 진득한 색이 스며든 목조 테라스, 곧 무너질 것만 같은 위태로운 건물들이 마치 시간 속에 갇힌 듯 멈춰서 있다.
여느 관광 도시와 마찬가지로 트빌리시 또한 무분별한 개발로 몸살을 앓았다. 역사적 가치가 있는 오래된 건축물이 현대식 건물들로 대체됐고, 잦은 전쟁이 남긴 상흔들이 콘크리트로 덕지덕지 메워졌다. 그러나 구석구석 남겨진 트빌리시의 좁은 골목길들은 화려하고 깨끗한 도시만이 아름다운 것은 아님을 조용히 속삭인다. 빨래와 구름이 대롱대롱 걸린 하늘, 빛바랜 파스텔톤의 가옥 사이를 뛰어다니는 아이들, 낡은 테라스 너머 미소를 건네는 트빌리시 사람들. 이 소박한 풍경들이야말로 수십 번의 파괴와 아픔을 딛고 다시 일어선 트빌리시가 지닌 가장 따뜻하고 진실한 얼굴이지 않을까.
러시아 정교회의 총본산 성삼위일체 대성당
조지아를 설명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종교다. 조지아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기독교 국가 중 한 곳이다. 가톨릭이나 개신교가 아니라 동방정교를 믿는다. 여행 내내 곁에서 바라본 조지아인들의 신앙심은 감탄을 자아낼 정도였다. 그들은 길을 걸으면서도, 차를 타고 가면서도, 산을 오르면서도 교회의 십자가가 나타나면 성호를 긋고 기도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조지아 정교회 역사의 시작은 4세기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다시 말하자면 끊임없는 외세의 침략과 탄압 속에서도 그들의 신앙심은 지금껏 단 한 번도 흔들린 적이 없다는 의미다.
아블라바리(Avlabari) 지역 엘리아 언덕(Elia Hill)에 자리한 츠민다 사메바(Tsminda Sameba) 성당으로 향한다. 트빌리시 성삼위일체 대성당(Holy Trinity Cathedral of Tbilisi) 혹은 밀레니엄 대성당이라고도 불리는 이 성당은 조지아 정교회의 총본산이자 트빌리시의 상징이다. 예수 탄생 2000주년, 조지아 정교회 독립 15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지어졌다.
9개의 예배당과 종탑, 수도원을 비롯한 여러 개의 부속 건물을 거느린 츠민다 사메마 성당은 정교회 중에서는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규모를 자랑한다. 정문에 들어서자마자 아치형 기둥 사이로 그림처럼 걸린 사메바 성당이 시선을 압도한다. 드넓은 광장을 지나 계단을 오르자 완벽한 균형을 자랑하며 수직으로 솟아오른 거대한 본당과 돔 위에 얹어진 7.5m의 황금빛 십자가가 그 위용을 드러낸다. 웅장함으로 시선을 압도하는 외관과는 대조적으로 내부는 정교회 특유의 정갈함과 고즈넉함이 가득하다. 사메바 성당을 떠나 므츠바리(Mtkvari) 강가 절벽 위에 자리한 메테키 교회(Metekhi Church)로 발길을 옮긴다. 메테키 교회는 5세기께 바흐탕 골가사리 1세(Vakhtang I Gorgasali)가 왕궁을 보호하기 위해 설립한 교회를 전신으로 한다.
시인 푸시킨도 사랑한 따뜻한 도시
메테키 교회 마당으로 가면 바흐탕 왕의 기마상이 위풍당당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트빌리시 건립에 관련된 전설 중 하나에 따르면 어느 날 바흐탕 왕은 이 지역에서 꿩(혹은 사슴)을 사냥 중이었다. 그러던 중 화살을 맞고 뜨거운 물가에 떨어진 꿩의 상처가 치유된 것을 발견했다. 그것을 본 바흐탕 왕은 이곳에 영험한 기운이 있다고 믿었고 므츠헤타에서 트빌리시로 수도를 옮기기로 결심했다. 트빌리시라는 이름은 ‘따뜻한’이라는 뜻을 지닌 조지아어 트빌리(Tbili)에서 유래했다. 메테키 교회에서 므츠바리강 건너편으로 보이는 곳이 바로 트빌리시의 유황온천 지대인 아바노투바니(Abanotubani)다. 역사적으로 페르시아와 오스만 제국의 영향을 많이 받은 탓에 둥그런 지붕이 얹어진 이슬람식 온천탕 형태를 띤다. 지금은 10여 개 온천탕이 있지만 중세에는 60개가 넘는 온천탕이 존재했을 만큼 성업했다. 러시아의 대문호인 푸시킨도 트빌리시 온천을 자주 찾은 것으로 유명하다. 그가 자주 찾았다던 오벨리아니 목욕탕 입구에는 ‘내 생에 트빌리시의 온천보다 더 황홀한 온천을 가본 적이 없다’는 푸시킨의 시구가 걸려 있다.
온천 지구에서 계곡을 따라 깊숙한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트빌리시 식물원(National Botanical Garden of Tbilisi)이 나온다. 청명한 숲길과 귀를 간질이는 새의 노랫소리, 절벽에서 쏟아져 내리는 폭포수 사이를 걷다 보면 이곳이 도심 한가운데라는 사실을 망각하게 된다. 산길을 따라 솔로라키 언덕 정상에 오르면 나리칼라 요새(Narikala Fortress)에 당도한다. 4세기께 최초로 세워진 이 요새는 수차례의 증축과 개축을 거쳐 현재의 모습에 이르렀다. 본래 ‘부러워할 만한 요새’라는 의미의 슈리스 치케(Shuris Tsikhe)로 불렸지만 조지아를 점령한 몽골인들에 의해 작은 요새를 뜻하는 나린칼라(Narin Qala)로 바뀌었다가 이후 현재의 명칭인 나리칼라로 변경됐다. 요새 옆에 건국 1500년을 기념해 세워진 높이 20m의 ‘조지아의 어머니상’도 빼놓지 말아야 할 볼거리다. 조지아 전통복을 입은 여인상의 왼손은 와인 잔을 오른손은 검을 쥐고 있다. 손님에게는 와인을 대접하지만 적에게는 칼로 맞서겠다는 조지아인의 의지를 상징한다. 석양 무렵이 되자 성벽 길은 트빌리시의 아름다운 전경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북적이기 시작한다. 붉게 타오르는 하늘 아래 황금처럼 빛나는 과거의 유산들, 조지아의 찬란한 미래를 상징하듯 불을 밝힌 평화의 다리, 그리고 그 사이를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므츠바리 강 속에 한데 뒤섞여 흘러간다.
트빌리시(조지아)=글·사진 고아라 여행작가 instok@naver.com
여행정보
인천과 트빌리시를 잇는 직항은 없다. 카자흐스탄 아스타나, 터키 이스탄불, 카타르 도하 등을 경유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언어는 조지아어, 러시아어를 쓰며 화폐는 라리(Lari)를 사용한다. 1라리가 한화 400원 정도다. 나리칼라 요새는 도보로 올라가는 방법 말고 리케 공원에서 운행하는 케이블카를 이용해서도 갈 수 있으니 참고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