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힘을 내요, 미스터리' 대놓고 웃겼다가, 작정하고 울렸다가

입력 2019-08-30 09:09
수정 2019-08-30 16:04


백혈병 걸린 딸과 정신지체 아빠의 재회. 이보다 더 진부하고 신파적인 설정이 있을 수 있을까.

'힘을 내요, 미스터리'는 코미디와 신파를 잔뜩 묻혀 버무린 영화다. 그럼에도 아예 작정하고 웃기고, 울리겠다고 달려들며 '직진' 전개를 선보이니, 그 모습이 오히려 매력으로 다가오는 작품이다.

주인공은 아빠와 딸이다. 밀가루 반죽을 하는 것만으로도 가는 길을 멈추고 바라보게 할 만큼 완벽한 비주얼의 소유자이지만, 공감 능력도, 인지능력도 부족한 철수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옳은 말만 한다. 동생 부부와 함께 운영하는 칼국수 집에 온 손님에게 "밀가루는 몸에 안좋아요. 살쪄요"라고 말하는 식이다.

매일 동네 주민센터를 찾아 막장 드라마를 보며 운동하는 것이 취미인 철수에게 알고보니 백혈병 걸린 10대 딸 샛별(엄채영)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희자(김혜옥)에게 납치당하듯 병원에 오게된 철수는 골수이식이 가능한 지 피검사부터 받고, 검사 결과를 기다리면서 평소 즐겨보던 막장 드라마를 보던 중 운명처럼 백혈병에 걸린 한 소녀를 만난다. 사라진 철수를 찾으러 온 동생 영수(박해준)는 희자를 보며 으르렁 거리고, 이미 여러 작품에서 지겹게 본 '출생의 비밀' 설정이 여기서 등판한다.

철수를 가리키며 "이 사람이 네 아빠야"라는 희자의 대사가 등장하자마자 막장 드라마와 교차편집으로 각각 캐릭터들의 충격을 잡아낸다. 진부하고, 그래서 너무 익숙한 소재를 가볍게 꼬아 버리는 이계벽 감독의 센스다.

이계벽 감독의 위트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전작 '럭키'를 통해서도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관객들을 웃겼던 이계벽 감독은 이번에도 익숙함을 비트는 방식으로 폭소케 한다. 샛별이 이승엽의 사인볼을 찾아 나가는 여정이나 철수와 희자의 사연이 소개되는 방식은 영화 속의 또 다른 콩트, 드라마로 선보여지면서 색다른 재미를 안긴다.

대놓고 웃기며 질주하던 영화가 눈물샘을 자극하기 시작하는 건 2003년 2월 18일 온 국민을 충격에 빠트린 대구지하철참사가 등장하면서부터다. 대구지하철참사는 시내 한복판, 많은 유동인구가 있는 지하철에서 50대 남성이 휘발유가 담긴 페트병을 들고와 화재를 일으키며 발생했다. 192명이 사망했고, 148명이 부상을 당했다. 이 사고로 지하철의 휘발성 소재들이 교체됐고, 안전교육이 강화됐다.

철수와 샛별이 대구지하철참사 피해자라는 사실이 알려진 후부터는 대놓고 울린다. 참사의 아픔을 진지하면서도 따뜻한 시선으로 그리면서도 씩씩하게 "견뎌낸"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모두가 잊을 수 없는 대형 참사를 다루지만 영웅은 없다. 모두가 함께 위기를 견뎌내며 '십시일반'한 모습이 강조됐다는 점이 '힘을 내요, 미스터리'의 미덕으로 보인다.

웃고 울리는 자극이 강한 탓에 호불호는 갈릴 수 있지만 추석을 맞이해 온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건강한 영화라는 것엔 이견이 없을 듯 하다. 잔인하거나, 선정적인 장면은 하나도 등장하지 않는다.

9월 11일 개봉. 러닝타임 111분. 12세 관람가.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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