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사립대학 교비회계 적립금이 전년 대비 1800여억원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2014년 이후 5년 연속 감소세다. 등록금 동결과 입학금 폐지, 입학정원 감축 등 대학의 재정 상황을 악화시키는 정책이 잇따르자 한계에 다다른 대학이 어쩔 수 없이 곳간을 헐어 쓰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사립대 적립금 전년 대비 2.2% 감소
교육부와 한국대학교육협의회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2019년 8월 대학정보공시 분석 결과’를 30일 발표했다. 이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56개 일반 사립대학의 교비회계 적립금은 7조8260억원으로 집계됐다. 2017년(8조48억원)과 비교해 1788억원(2.2%) 감소했다. 적립금은 대학이 미래에 일어날 일을 대비해 기부금과 법인전입금 등을 아껴 모아 놓은 기금이다. 대학의 ‘예비 곳간’으로 불리며 재정건전성을 나타내는 지표로 쓰이기도 한다.
사립대학 적립금은 지역 간 격차도 크게 벌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수도권 65개 대학의 적립금은 2017년 5조4359억원에서 지난해 5조3457억원으로 1.7% 감소했다. 비수도권 91개 대학의 적립금은 같은 기간 2조5689억원에서 2조4803억원으로 3.4% 줄었다. 교육계 관계자는 “적립금을 헐어 쓰는 것은 일반 가정으로 따지면 적금을 깨는 것과 다름없다”며 “재정 상황이 어려운 비수도권 대학일수록 적립금이 더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등록금 인상 규제 풀어야”
대학 간 적립금 ‘빈부격차’도 심각한 상황이다. 지난해 적립금 상위 20개 대학이 쌓은 금액(4조3070억원)은 전체 적립금(7조8260억원)의 55.0%를 차지했다. 상위 20개 대학은 평균 2543억원의 적립금을 쌓았다. 반면 하위 67개 대학은 비축해 놓은 적립금이 100억원에도 못 미쳤다. 적립금을 한 푼도 모아 놓지 못한 대학도 9개에 달했다.
일부에서 제기되는 “대학이 8조원에 달하는 적립금을 쌓아 놓고도 재정 상황이 열악하다고 거짓말한다”는 비판에 지방 대학들이 억울함을 호소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지방의 한 사립대 기획처장은 “비수도권 대학들은 적립금을 쟁여 놓기는커녕 매년 운영비를 충당하기 위해 야금야금 꺼내 쓰는 상황”이라며 “이 같은 적자 경영이 지속되면 수년 내 적립금은 바닥을 드러낼 것”이라고 토로했다.
대학 적립금은 사용 목적에 따라 건축·장학·연구·퇴직·특정 목적 기금으로 구분된다. 지난해 기준 전체 적립금 중 장학기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18.1%에 불과했다. 쌓아 놓은 적립금을 풀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주장도 현실성이 떨어지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사립대학 적립금 감소는 대학 재정 상황에 ‘빨간불’이 켜졌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2009년 ‘반값 등록금’ 정책 시행 이후 11년째 등록금이 동결되면서 대학 재정이 파탄 직전에 이르렀다는 설명이다.
대교협 관계자는 “강사법(고등교육법 개정안) 시행에 따른 강사 고용부담 증가와 입학정원 감축으로 인한 등록금 수입 감소까지 더해지면서 대학은 그야말로 고사 위기에 내몰렸다”며 “등록금 인상 규제를 유지한다면 지방 대학부터 줄줄이 문을 닫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종관 기자 p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