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 3종에 대한 대(對)한국 수출 규제를 시작한 지 57일 만에 고순도 불화수소(에칭가스) 수출을 허가했다. 지난달 4일 수출 규제 이후 극자외선(EUV)용 포토레지스트(감광액) 수출은 두 차례 허가했지만 불화수소를 허가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국내 반도체업계에선 “급한 불은 끌 수 있게 됐지만 안심하기엔 이르다”는 반응이 나온다.
29일 산업통상자원부와 업계에 따르면 일본 경제산업성은 이날 한국으로의 불화수소 가스 수출 1건을 허가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일본이 한국으로의 불화수소 가스 수출 1건을 허가한 사실을 업계를 통해 확인했다”고 말했다. 수출 물량은 확인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관계자는 “그간 막혀 있던 불화수소 수출 허가가 난 것은 고무적”이라며 “다만 아직 수출 규제 자체에 대한 일본 정부 태도에 변화가 없어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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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공급처 다변화' 움직임에…日, 불화수소도 마지못해 허가
반도체 업계 "한숨 돌렸다"
이번에 수출 허가를 받은 고순도 불화수소는 삼성전자가 요청한 물량으로 알려졌다. 경제계에선 일본 정부가 고순도 불화수소 수출을 전격 허가한 것에 대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업체들이 공급처를 일본 업체에서 중국 업체 등으로 교체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29일 일본 재무성이 공개한 7월 품목별 무역통계에 따르면 반도체 세정 공정에 사용하는 고순도 불화수소의 지난달 한국 수출량은 479t으로 전월 대비 83.7% 급감했다.
업계 관계자는 “수출길이 막혀 발등에 불이 떨어진 모리타화학공업 등 일본 불화수소 제조 업체가 지속적으로 ‘수출 허가’를 요청했다”며 “일본 정부도 자국 기업의 호소를 외면하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파기 등 한·일 관계가 악화되는 가운데 일본 정부가 ‘명분 쌓기용’으로 일부 품목에 제한적으로 수출 허가를 내주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앞서 일본 정부는 지난 7일, 19일 두 차례에 걸쳐 포토레지스트 수출을 허가했다. 정부 관계자는 “일본의 태도 변화가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어 상황을 더 지켜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반도체업계에선 “한숨 돌릴 수 있게 됐다”는 반응을 내놓고 있다. 현재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의 고순도 불화수소 재고는 두 달치 정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 제품 등에 대한 테스트를 진행 중이지만 도입 관련 구체적인 일정은 확정되지 않은 상태”라며 “일본 제품이 들어온다면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길 것”이라고 설명했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