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하면 항상 따라 오는 얘기들이 있다. 스마트폰에 밀려 TV 수요는 감소하는데 중국 업체들의 공격적인 투자로 공급은 계속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시장 자체가 성숙단계에 접어들어 더 이상 혁신 제품이라고 할 만한 TV를 보기 힘들 것이라는 분석도 이어진다.
이런 비관론은 늘 삼성전자 앞에서 힘을 잃는다. 위기가 언제였냐는 듯 신제품으로 수요를 창출하고 신기술로 중국의 추격을 따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가 2006년부터 14년째 세계 TV 시장에서 1위를 달리는 이유다.
○QLED로 14년 연속 1위
삼성전자 영상디스플레이(VD)사업부는 늘 새로운 제품으로 시장을 이끌어왔다. 2006년 와인 색깔을 입힌 ‘보르도 TV’로 선진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처음으로 세계 TV 시장 1위에 올랐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엔 모두가 움츠러들었지만 패널 테두리에 LED(발광다이오드)를 넣은 LED TV로 1위를 지켰다. 이어 2010년엔 화면의 입체감을 높인 3D TV를 내놨고, 이듬해엔 알아서 다 해주는 스마트 TV로 시장을 재편했다. 이어 음성 및 동작 인식 스마트 TV를 만들었다.
작년 말부터 삼성이 내세우고 있는 ‘게임 체인저’는 QLED 8K다. LCD(액정표시장치)에 퀀텀닷 필름을 씌운 제품으로 초고화질인 8K 화면을 제공한다. 이 제품의 해상도(7680×4320)는 풀 HD TV의 16배라는 게 삼성전자 측 설명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QLED 8K는 3300만 개 화소를 구현하는 초고해상도 디스플레이와 퀀텀닷 기술을 접목해 업계 최고 수준의 밝기와 명암비를 보여준다”며 “실제 사물과 같은 색을 재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55인치에서 98인치까지 QLED 8K 제품군을 확대했다. 이와 함께 다른 신제품에도 QLED 디스플레이를 적용했다.
제품군 강화에 힘입어 삼성 QLED TV는 올해 상반기에만 약 200만 대 팔렸다. 92만 대를 판매한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2배가 넘는 실적이다.
QLED TV를 비롯한 프리미엄 제품 덕에 삼성전자는 지난 2분기 세계 TV 시장에서 31.5%(판매액 기준)의 점유율로 14년 연속 1위 자리를 지켰다. 전 분기 대비 2.1%포인트, 전년 동기 대비 1.8%포인트 각각 오른 수치다. 이 때문에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가 속한 소비자가전(CE) 부문의 실적도 개선됐다.
○고급 TV 50% 이상이 삼성 제품
삼성전자가 TV 시장에서 독주하는 것은 돈 되는 제품에 주력해서다. 승부처인 프리미엄 TV 시장에서 폭발적으로 성장하며 경쟁사들을 압도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초대형 TV와 프리미엄 제품에서 후발 업체들과 ‘초격차’를 내고 있다.
삼성전자는 올 상반기에 75인치 이상 TV를 64만 대 이상 팔았다. 작년 동기 대비 1.5배가량 증가했다. 75인치 이상 대형 TV 시장에서 53.9%의 점유율(금액 기준)을 기록했다.
삼성전자는 2500달러 이상 프리미엄 시장에서도 2분기에 53.8%의 점유율을 나타냈다. 이 기간 세계에서 팔린 300만원 이상 TV 두 대 중 한 대가 삼성 제품이라는 얘기다.
삼성전자는 프리미엄 시장 지배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는 데도 앞장섰다. TV를 잘 보지 않는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 초반~2000년대 초반 출생)를 겨냥한 신개념 라이프스타일 TV 3종을 내놓은 게 대표적 사례다. 지난 4월 나온 신개념 TV 3종은 세로로 돌려볼 수 있는 ‘더 세로’, 명품 가구처럼 디자인한 ‘더 세리프’, 액자처럼 인테리어와 조화를 이룰 수 있게 한 ‘더 프레임’이다.
이 제품에도 QLED를 적용하고 밀레니얼 세대들이 좋아할 만한 기능을 추가했다. 게임 기기와 TV가 연결되면 자동으로 게임 모드로 변경된다. TV를 보지 않을 때 화면에 뉴스나 음악이 제공되는 ‘매직 스크린’ 기능도 들어갔다.
○콘텐츠 강화로 8K 시대 선도
삼성전자는 QLED 8K TV가 당분간 시장을 이끌 것으로 보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IHS마킷은 올해 글로벌 8K TV 시장 규모를 22만 대로 예상했다. 1년 전보다 12배 성장한 수치다. 4K TV 시장 규모가 출시 이듬해 7배 수준 성장했던 점을 생각해 보면, 8K 성장세가 더 빠르다고 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8K 시대는 시기상조라는 분석도 나온다. 8K로 제공되는 영상이나 콘텐츠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삼성은 예상보다 빨리 8K가 시장을 지배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4K 영상을 8K 수준의 고화질로 변환해주는 기술(업스케일링)이 있기 때문이다. TV 전문가인 존 아처는 포브스 기고문을 통해 “4K TV가 처음 등장했을 때도 4K 콘텐츠가 거의 없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며 “8K TV가 보편화되면 8K 콘텐츠가 따라서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초고화질이 좀 더 나은 시청 환경을 조성할 것이라는 분석도 ‘8K 대중화가 머지않았다’는 전망에 힘을 보태고 있다. 이경민 서울대 인지과학연구소장은 “8K 수준의 초고해상도 디스플레이가 뇌과학적 관점에서 사용자에게 더 나은 시청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8K 시대를 앞당기기 위해 국내외 방송사들과 시험 방송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최근 KT 스카이라이프와 손잡고 실시간 8K 위성 방송 송수신에 성공했다. 지난 5월엔 룩셈부르크에서 유럽 위성 방송 사업자 SES 아스트라와 함께 유럽 최초로 8K 위성 방송을 선보였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삼성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의 TV 제조사들이 8K TV를 속속 선보이고 있다”며 “향후 8K 생태계 확대를 위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해 8K 시장 성장을 주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정인설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