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세' 박영선 장관 앞에서 목소리 작아지는 관료 장관들

입력 2019-08-28 17:36
수정 2019-08-29 02:12
지난 5일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소재·부품·장비 경쟁력 강화 회의. 일본 수출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각 부처 장·차관 20여 명이 참석한 자리에서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사진)이 얼굴을 붉히며 언쟁을 벌였다. 언론에 발표할 내용을 조율하는 과정에서다.

한·일 무역분쟁의 주무부처 수장인 성 장관이 “1년 내 20개, 5년 내 80개 전략 품목을 집중 육성하겠다”는 내용을 설명하자 박 장관이 갑자기 “대·중소기업 상생 품목 30여 개 육성 방안을 따로 공개하겠다”고 했다. “초점을 흐릴 수 있다”며 성 장관이 반대했지만 박 장관은 굽히지 않았다. 결국 ‘대·중소 상생품목 지원안’을 별도로 발표했다.

산업부와 중기부가 서로에 각을 세우고 있다. 산업부 산하(외청)였던 ‘중소기업청’이 현 정부 출범 이후 독립한 영향도 있지만 여권 실세인 박 장관이 지난 4월 취임한 뒤 중기부 힘이 부쩍 커진 게 근본 원인이란 전언이다.

소재·부품·장비 회의 땐 발표 자료의 표현을 놓고서도 두 장관이 세게 부딪쳤다고 한다. 성 장관이 “수요-공급기업 간 협력이 중요하다”는 문구를 읽자 박 장관이 “그렇게 어려운 용어를 쓰면 어떻게 하느냐”며 끼어들었다. 방송기자 출신인 박 장관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상생이라고 쓰라”고 훈수를 뒀다.

이날 회의에 참석했던 정부 관계자는 “현역 4선 의원인 박 장관이 국정감사 때처럼 성 장관에게 상당히 고압적인 자세로 일관하더라”고 귀띔했다. 회의 분위기가 어색해지자 홍 부총리는 “다 내 부덕의 소치”라며 서둘러 마무리지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또 다른 자리에선 박 장관이 “스마트공장 프로젝트의 주무부처는 중기부인데 왜 산업부가 나서느냐”고 성 장관에게 항의하는 일도 있었다. 실제 스마트공장(생산의 전 과정을 무선통신으로 연결한 공장) 업무가 작년 중기부로 이관됐으나 스마트 산업단지는 산업부가 관할하고 있다.

산업부 관계자는 “중기부가 박 장관을 믿고 워낙 강경하게 밀어붙이다 보니 우리 쪽에선 ‘스마트’란 단어를 쓰는 것조차 눈치를 봐야 한다”고 말했다.

부처 간 이견을 조율하는 국무조정실도 난감해하는 건 마찬가지다. ‘교통정리’가 쉽지 않다 보니 중기부가 끼어있는 사안에 대해선 아예 정책 안건으로 올리는 걸 꺼린다는 얘기도 나온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