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자금관리 시스템' 개발해주는 은행들

입력 2019-08-28 17:35
수정 2019-08-29 01:17
은행들이 기업별 맞춤형 디지털 자금 관리·결제 시스템을 개발해 제조업자개발생산(ODM) 방식으로 보급에 나서고 있다. 정형화된 앱(응용프로그램) 대신 각 기업의 거래 및 경영 형태에 맞는 시스템을 구축해 공급하는 형태다. 잠재적인 기업 고객 확보를 위한 투자 차원이다. 모바일 앱에서 시작된 은행의 디지털 전쟁이 기업 금융 인프라로 확장되고 있다.


국민銀, 타이어뱅크 시스템 구축

은행들은 최근 정보기술(IT)·디지털 인력을 대폭 확충했다. 자체적인 IT 시스템 개발이 가능할 정도로 디지털 역량도 강화했다. 은행들이 기업에 ODM식 디지털 자금관리 시스템을 공급하는 사례가 늘어나게 된 배경이다.

국민은행은 이달 중순 타이어뱅크와 업무협약을 맺고 이 회사에 디지털 관리 시스템을 구축해주기로 했다. 타이어회사 특성상 전국에 지점을 두고 있지만 자금 관리는 수기로 해 디지털화가 더뎠다. 자금 관련 업무가 있을 때는 주로 은행 창구를 찾았다. 개발 중인 새 시스템을 이용하면 자금계획 수립부터 각종 대금 수납, 지급 관리, 법인카드 관리, 현금 흐름 모니터링까지 모두 디지털로 처리할 수 있다. 신덕순 국민은행 중소기업고객그룹 대표는 “전체 계열사를 아우르는 자금 관리 서비스를 구축하기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 은행은 현대상선과도 수출입 업무 관련 디지털 자금관리 시스템 개발을 위한 협약을 맺었다. 수출입 기업과 선사 등 다양한 거래 대상이 연결되는 해운업 특성상 좀 더 진화된 방식의 자금 관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물류 및 통관 비용을 정산할 때 무역 서류 정보 등을 디지털화하고, 복잡한 자금 정산 업무를 간소화하는 게 새 시스템의 골자다.

농협은행은 가상의 은행 점포 역할을 하는 ‘클라우드브랜치’를 개발해 지금까지 439개 기업에 공급했다. 최근에는 치킨 프랜차이즈 BBQ를 운영하는 제너시스그룹과 협약을 맺고 플랫폼을 구축해주기로 했다. 이 플랫폼을 사용하면 은행에 가지 않아도 기업 내에서 온라인으로 해당 기업의 금융거래와 자금 관리 업무를 처리할 수 있다.

신한은행은 글로벌 유통업체 암웨이의 한국법인인 한국암웨이에 자금 결제 플랫폼을 공급했다. 암웨이 회원이 비밀번호 여섯 자리만 입력하면 신한은행 계좌로 대금을 결제할 수 있다. 기업은 전자지갑을 통해 간편하게 결제 대금을 받고 자금을 관리할 수 있다.

“기업 고객 인프라 확대”

은행들이 개발해 기업에 공급하는 ODM식 자금 결제 시스템은 대부분 사용료가 무료다. 당장 이익이 나지 않는데도 은행들이 앞다퉈 기업과 손잡는 것은 잠재적인 고객 확보 차원에서다. 특정 기업에서 은행이 개발한 자금 시스템을 사용하면 해당 은행은 자동으로 주거래 은행이 된다. 시스템을 통해 자금 관리를 하다 보면 새로운 예금 및 대출 수요도 자연스럽게 생겨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중견기업은 계열사 직원 수가 많기 때문에 직원들을 상대로 영업에 나설 수도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고객으로서는 은행에 가지 않고도 체계적으로 자금 업무를 볼 수 있어 좋고 은행은 잠재 고객을 확보할 통로가 생겨 이익”이라고 설명했다.

■ODM

original development manufacturing. 제조업자개발생산 방식의 줄임말. 설계와 개발 능력을 갖춘 업체가 상품 또는 재화를 개발해 유통업체 등에 공급하는 것을 말한다.

정소람 기자 r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