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프로그램 한 편을 볼 때마다 몇 편의 광고를 보게 되는 걸까. 살면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광고를 봐왔을까.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시간이 한참 지났어도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CM송이나, 특정 출연자만 보면 연상되는 광고, 가슴 뭉클했던 광고 줄거리는 ‘역대급 광고’라는 표현을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 같다. CM송 작곡자도 출연자도 제작진도 자랑스럽고 행복했던 광고가 되기 위한 조건은 단순하다. 제품 이미지에 꼭 어울리는 연예인이 출연, 감성에 호소하는 경제적인 줄거리를 전개한다. 그리고 제품 특징을 잘 담아낸 가사와 귀에 감기는 쉬운 멜로디의 CM송을 흘리면 된다.
성하의 계절을 상징하는 매미소리가 잦아들면 가을의 전령사 귀뚜라미가 찾아온다. 귀뚜라미가 울면 곧 추위가 올 것이고 따뜻한 실내가 그리워진다. 제품 이름에 감성과 계절 감각을 담아낸 귀뚜라미보일러가 2018년 가을부터 선보인 홍진영 씨 출연 광고 ‘귀뚜라미보일러 세트’ 편은 이보다 더 전략적일 수 없다.
우선 25년 전 선보였다는 CM송이 전혀 ‘올드’하지 않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CM송인데도 흥겹게, 나도 모르게 따라 부르고 있다. ‘따뜻한 우리 집은 귀뚜라미…보일러는 역시! 귀뚜라미.’ 짧아도 너무 짧은 도입부와 말미 CM송 사이에 가스 누출 탐지기, 지진감지기, 분배기, 각 방 제어기까지 한 세트로 갖춰야 안전하고 경제적이라는 점을 서술한다. 이전에 귀뚜라미보일러가 강조해왔던 ‘가스비를 절감하려면 네 번 태워야 하고, 거꾸로 태워야 하고~’ 등의 메시지에서 나아가, 더 다양한 기능으로 진화했음을 단번에 주지시킨다. 귀뚜라미보일러는 가스 누출도 탐지하고, 지진도 감지할 수 있고, 분배 기능도 되고, 각 방 제어도 가능한 최신 안전기술과 편의사양을 갖추게 됐다. 이런 기능을 구구절절 설명했다면 지루했을 텐데, 귀에 익은 CM송 사이에 간결하게 제품으로 보여주니 자연스럽게 입력된다.
메시지 전달자가 가수 홍진영 씨여서 부담없이 볼 수 있다. 홍씨는 걸그룹 출신 트로트 가수로 가창력을 인정받은 것은 물론 관객과의 호흡을 잘 유도하는 가수로 전 연령층에서 고루 사랑받고 있다. 상큼, 발랄한 통통 튀는 이미지 덕분에 그늘이 없는 밝은 성격으로 보인다. ‘귀뚜라미보일러 세트’ 편은 그 개성을 십분 살리고 있다.
살그머니 문을 열고 등장하는 도입부도, 치마자락을 팔락이며 가볍게 춤을 출 때도, 어깨를 으쓱할 때도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특히 기능을 모두 소개한 뒤 진심을 꼭 알아달라는 듯 두 손을 맞잡고 밝게 웃을 때, 이제는 난방과 가스비 절감 기능을 넘어서 최신 안전기술과 편의사양을 갖춘 귀뚜라미보일러가 아니면 안 되겠구나 하게 된다.
이 세트 편을 편하고 예쁜 광고로 기억하게 하는 데는 단순한 배경과 절제된 색감 조화도 한몫한다. 파란색 방문을 열고 살며시 들어오는 홍진영 씨는 노란 스웨터와 짙은 잿빛 스커트 차림에 입술만 붉게 강조했다. 파란색 벽지를 배경으로 설치된 보일러는 크고 작은 네모들의 집합체인 흰색이다. 각 기능을 전할 때 연결되는 가늘고 노란 선. 마지막에 강조되는 귀뚜라미보일러 세트 글자 색도 흰색을 기본으로 파란색과 노란색을 곁들였다.
평을 위해 리플레이하며 봤기에 글자 크기에서 색감까지 눈에 든 것이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실 광고는 아무 정보 없이 처음 봤을 때 확 다가와야 한다. CM송도 출연자도 이야기 전개도 색채도 주도면밀하게 계산해야만 소비자에게 쉽게 사랑스럽게 경제적으로 인식된다. 그래서 유명 광고 연출자로 영화감독과 뮤직 비디오 감독이 많이 참여한다. 반대로 광고를 잘 찍던 연출자가 극영화계로 진출해 성공하기도 한다. 두 시간짜리 극영화와 1분 안팎의 귀뚜라미보일러 영상 광고, 어느 쪽이 더 어려울까. 귀뚜라미 세트 광고일 것 같다.
옥선희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