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PF(프로젝트파이낸싱)가 증권사들의 독무대가 됐다. 하지만 정부가 민간택지에도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하기로 하는 등 부동산 시장 침체 위험이 높아지고 있어 문제다. 금융당국이나 신용평가사도 제2의 저축은행 사태를 우려해 경고음을 울리고 있다. 증권사 부동산PF의 현황과 위험요인을 살펴보고, 블랙스완(예상치 못한 위험)과 마주치지 않을 방안을 알아본다.[편집자주]
부동산PF가 증권사들의 독무대가 된 이후 채무보증(우발채무)에 대한 우려가 확대되고 있다. 우발채무는 현재는 부채가 아니지만 우발적인 사태가 발생하면 확정될 수 있는 부채를 말한다.
부동산PF 관련 우발채무는 유동성공여와 신용공여로 구분된다. 유동성공여는 시장에서 매각되지 않은 PF 관련 유동화증권(ABCP, ABSTB)을 매입보장약정 증권사가 매입해주는 것이다. 신용공여는 시행사가 대출을 갚지 못하거나 유동화증권 차환수요가 충분치 못한 경우 증권사가 전체 또는 일부를 상환 및 매입한다.
유동성공여는 신용등급 하락 등 신용이슈가 발생하면 매입 의무를 회피할 수 있다. 그러나 신용공여는 이러한 조항이 없어 위험 수준이 훨씬 높다. 위험도에 비례해 당연히 수수료는 신용공여가 더 높다.
증권사들의 전통적 수익원이었던 주식위탁매매(브로커리지) 이익은 눈에 뜨게 줄었다. 때문에 투자은행(IB) 영역으로 활로를 모색하고 있고, 최근 급부상한 것이 수수료가 높은 부동산PF다. 증권사들의 부동산PF 관련 우발채무는 신용공여를 중심으로 증가 중이다. 증권사의 블랙스완으로 지목되는 이유다.
◆증권사, 부동산 PF 신용공여 28조원…전년비 13.2% 증가
<한경닷컴>은 전문가의 자문을 통해 관련 실적이 있는 국내 24개 증권사의 공시를 통해 신용공여 수치를 추산해 봤다. 관련 추산에 대해 대부분의 증권사가 비슷한 수준이라고 답했고, KB증권과 BNK투자증권의 경우 직접 수치를 제시해줬다.
증권사들의 공시 및 설명에 따르면 국내 24개 증권사들의 부동산PF 관련 신용공여 총액은 28조3318억원이다. 작년 말 25조1786억원보다 3조1532억원(12.5%) 증가했다.
메리츠종금증권이 4조원대로 신용공여 금액이 다른 증권사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다. 메리츠종금증권의 신용공여액은 4조128억원이다. 이어 하나금융투자(3조7414억원) 한국투자증권(3조931억원) NH투자증권(2조9554억원) 신한금융투자(2조2423억원) KB증권(1조8000억원) 미래에셋대우(1조7023억원) 등 신용공여 절대 금액은 대형증권사들이 압도적이었다.
다만 신용공여의 절대 규모보다 성격이 중요하다는 게 업계의 생각이다.
증권사 부동산금융 관계자는 "부동산 경기침체 시 PF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중·후순위 대출"이라며 "선순위는 전체 사업비의 50~60%를 조달해주고 가장 먼저 상환받는데, 이는 최종 매출(분양대금 등)이 예상의 50~60% 이하로 떨어지지 않는다면 손해를 볼 수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부동산 경기에 대한 우려가 있다지만, 분양가와 분양률 등이 절반에도 못 미치는 상황은 예상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더 높은 수수료를 받는 대신 실제 매출이 예상의 50~60% 이상 나와야 상환받는 중순위와 후순위 대출이 위험도가 더 높다는 말이다.
이 관계자는 "선발주자인 대형 증권사의 부동산PF는 대부분 선순위"라며 "부동산금융의 후발주자인 중소형 증권사들이 최근 중·후순위 대출에 공격적으로 뛰어들고 있다"고 했다.
◆ 중소형 증권사, 자기자본 대비 신용공여 비중 큰 폭 상승
실제 다수 중소형 증권사들의 신용공여 금액은 올 들어 급증하고 있다.
24개 증권사 가운데 지난해 말 대비 현재 신용공여 증가율 상위 10개사는 13~81%대의 증가율을 보였다. 10곳 중 5개가 자기자본 1조원 미만의 중소형 증권사였다. 교보증권(신용공여 증가율 45.5%) BNK투자증권(43.7%) 이베스트투자증권(19.6%) 하이투자증권(15.9%) DB금융투자(13.3%) 등이다.
자기자본 대비 신용공여 비중도 살펴봐야 한다. 이들이 감당할 수 있는 여력에 비해 과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1조원 미만의 중소형 증권사들 가운데 비중은 하이투자증권이 가장 높았다. 하이투자증권의 자기자본은 7697억원인데 신용공여액은 7670억원으로 99.6%에 달했다. 이베스트투자증권(65.4%) 교보증권(62.4%) 유진투자증권(58.9%) 현대차증권(58.9%)등이 뒤를 이었다.
자본대비 신용공여 비중 증가율로 살펴봐도 중소형사의 취약점이 여실히 드러난다.
지난해 말보다 신용공여 비중이 가장 큰 폭 늘어난 곳은 하나금융투자로 46.6%포인트 증가했다. 하지만 중소형사만 놓고 보면 교보증권이 17.0%포인트로 가장 높았다. 하이투자증권(10.6%포인트) 등도 10%포인트대로 증가했다.
김기필 NICE신용평가 연구원은 "부동산 경기 하강위험 증가로 부동산 PF 우발채무 현실화 가능성이 증가하고 있다"며 "특히 우발채무 중 상대적으로 위험 현실화 가능성이 높은 신용공여형 우발채무의 자기자본 대비 규모와 증가율이 큰 증권사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송렬/전형진/차은지/윤진우 한경닷컴 기자 yisr020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