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한국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파기에 대해 실망감을 나타내면서 앞으로 진행될 양국 간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서 미국의 압박이 더 거세질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미·일 3각 동맹이 흔들리면서 생길 수 있는 안보 공백을 이유로 들어 미국이 우리 정부에 분담금 증액을 강하게 요구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한국 정부의 지소미아 파기 결정이 방위비 분담금 관련 협상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이 될 수밖에 없다고 분석한다. 진창수 전 세종연구소장은 “일본이 한·미·일 군사적 공조를 우리 정부가 깼다고 항변할 것이고, 미국도 거기에 동조하면서 방위비 분담금 인상의 압박 수단으로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북한에 대한 감시공백을 해소하기 위해 미국 측이 전략자산의 배치를 늘릴 경우 이에 따른 사용료 요구도 커질 수 있다.
미 국무부는 22일(현지시간) 낸 논평에서 “문재인 정부의 지소미아 파기 결정이 우리 동맹의 안보 이익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비판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지난 21일 미국의 한 정치 전문지와의 인터뷰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내게 요청한 것은 미국인을 위해 좋은 결과를 얻는 데 집중하라는 것”이라며 “우리는 한국이 미국과의 관계에서 더 많은 방어 비용을 지불하게 하기 위해 공을 들이고 있는데, 그 점도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방위비 증액 요구를 공개적으로 압박한 것이다.
방위비 분담금은 주한미군 주둔 비용 중 한국이 부담해야 하는 몫이다. 그동안 3~5년 단위로 협상했지만 지난해부터는 1년 단위로 한국 외교부와 미 국무부가 협상을 벌이고 있다. 내년 이후 적용될 방위비 분담금 규모를 정할 협상은 이르면 다음달 중순 시작될 전망이다.
미국은 직·간접적으로 한국 정부에 분담금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7일 트위터에서 한국을 ‘매우 부유한 나라’라고 지칭하고 “한국이 북한 위협에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미국에 현저히 더 많은 돈(방위비 분담금)을 내기로 합의했다”고 주장했다. 지난달 한국을 찾은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한국의 분담금 인상 필요성을 언급했다.
한국의 지난해 분담금은 9602억원이었다. 올해 분담금은 이보다 8.2% 인상된 1조389억원으로 책정됐다. 일각에서는 미국 측의 증액 요구 수준이 올해 분담금의 여섯 배 수준인 50억달러(약 6조1000억원)에 달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정호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