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미국 뉴욕 채권시장이 발칵 뒤집혔다. 미국 국채 2년물 금리가 장중 한때 10년물 금리보다 높아지는 이례적 현상이 나타나서다. 통상 만기가 긴 채권일수록 미래의 불확실성이 반영돼 금리가 더 높은 것이 ‘정상’인데, 정반대가 된 것이다. 이 영향으로 다우지수는 3.05%, S&P500지수는 2.93% 떨어지는 등 미국 금융시장 전체가 요동쳤다. 글로벌 금융시장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는 얘기다. 금융시장은 ‘경제의 거울’이니 실물경제 또한 그만큼 좋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입에 담기조차 싫은 단어 ‘리세션’
수시로 바뀌게 마련인 금리가 잠깐 뒤집혔다고 해서 왜 이렇게 야단법석인 걸까. 장·단기 금리의 역전 현상은 경기 침체의 강력한 신호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1978년 이후 미 국채 2년물과 10년물 간 금리 역전은 다섯 번 발생했고, 평균 22개월 후 모두 경기 침체로 이어졌다. 이날 금리 역전은 세계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 6월 이후 12년여 만이었다.
경제가 나빠질지 모른다는 우려가 확산되면서 금융시장에는 ‘R의 공포’라는 말이 회자하고 있다. 알파벳 R은 경기 침체(recession)를 가리킨다. 투자자들이 리세션이라는 단어를 굳이 언급하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에 머리글자로 부르는 것이다. 경기 침체를 뜻하는 또 다른 단어인 디프레션(depression)의 앞글자를 따서 ‘D의 공포’라고 부르기도 한다.
경기가 침체에 접어들면 살림살이를 팍팍하게 만드는 여러 악재가 이어진다. 기업의 영업활동이 저하되고, 투자와 고용이 줄면서 실업자가 늘어난다. 구매력이 약해진 소비자들은 지갑을 닫게 된다. 공급이 수요를 초과함에 따라 재고가 누적되고, 상품·서비스 가격 하락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기술적으로는 실질 GDP 증가율이 2분기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것을 경기침체로 정의한다.
모든 나라는 ‘골디락스’ 경제를 꿈꾼다
경기순환 이론에 따르면 경제 상황은 회복기, 호황기, 후퇴기, 불황기의 단계를 반복한다. 1년마다 사계절이 반복되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불황의 긴 터널을 지나다가도 언젠가는 ‘경기가 바닥을 쳤다’는 기대감을 갖게 될 수 있는 이유다. 하지만 반짝 좋아질 조짐을 보이던 경기가 다시 속절 없이 주저앉는 경우도 있다. 이런 상황은 ‘더블 딥’이라 부른다. 두 번이라는 뜻의 더블(double)과 급강하를 의미하는 딥(dip)을 합친 말이다. 생산이 반등하는 상황에서 소비가 이를 뒷받침하지 못해 불황에 재진입하게 되는 것이다.
경제가 가장 이상적으로 돌아가는 상황은 ‘골디락스’라 할 수 있다. 영국의 전래동화 <골디락스와 세 마리 곰>의 여주인공 이름을 딴 단어다. 동화 속에서 골디락스는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은 적당한 온도의 수프를 발견하고 마음껏 배를 채운다. 경제학자들은 경제성장률, 물가상승률 등이 모두 양호한 수준을 유지하면서 경제가 안정적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골디락스에 비유한다. 미국 경제가 장기간 호황을 이어갔던 1996~2005년 등이 골디락스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임현우 한국경제신문 기자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