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사설 깊이 읽기] 금융시스템 발전할수록 '정보 비대칭' 위험 경계해야

입력 2019-08-26 09:00
[사설] 금융시장 후진성 드러낸 DLS사태, 책임소재 철저히 따져야

해외 금리에 크게 영향받는 ‘금리연계형 DLS(파생결합증권)’ 상품의 불완전 판매 논란이 커지고 있다. 원금 전부를 잃을 수도 있는 이런 고위험 상품이 어떻게 ‘돈 장사’를 보수적으로 하는 시중은행에서 대거 판매됐는지 선뜻 이해가 안 된다.

문제의 이 파생상품에 개인투자자 3654명의 투자금 7326억원이 물려 있다. 1인당 2억원꼴인데, 독일 10년물 국채를 기초자산으로 삼은 상품은 이미 원금 대부분이 손실되는 구간에 들어섰다. 영국 파운드 등의 이자율에 연동된 상품도 50% 이상 원금 손실이 예상된다고 한다. 금융감독원은 조만간 설계한 증권사와 판매 은행 등을 대상으로 정밀 검사를 벌일 계획이다.

1차 쟁점은 ‘불완전 판매’ 여부일 것이다. 해당 상품의 고위험성이 금융소비자들에게 제대로 설명됐느냐가 초점이다. ‘정보 비대칭’의 문제는 금융뿐 아니라 어떤 시장에서도 나타날 수 있는 구조적 취약점이다. 그런 만큼 판매 은행이 고지의무를 이행했는지 감독당국이 정확·냉철하게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정보 비대칭이 투자자의 도덕적 해이나 자기책임의 원칙까지 덮을 수는 없다. 금리 파생상품에 2억원씩 투자할 정도라면 ‘고수익=고위험’이라는 기본원리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한다. 독일 국채 금리가 -0.7% 아래로 떨어진 게 불가항력의 상황인지, 글로벌 저금리 국면에서 예상가능한 현상으로 봐야 할지 등은 전문가도 쉽게 단정하기 어려운 일이다.

새로운 상품을 다루는 설계사·운용사·판매사는 물론 투자자들도 더 긴장하고 철저해야 한다. ‘키코(KIKO) 사태’, 동양증권 CP 및 일부 저축은행의 후순위채권 불완전 판매 논란을 겪고도 교훈을 얻지 못했다. 돈이 ‘돈값’을 못하는 저금리 시대에 금융 기법이 발전하면서 이런 일은 얼마든지 되풀이될 수 있다. 그렇다고 감독당국이 건건이 사전 심사에 나선다면 시장을 억누르는 규제가 된다는 사실이 딜레마다. 금융시장의 후진성을 떨쳐내기 위해서라도 감독당국이 시장 변화에 좀 더 긴장하고 ‘이상 기류’를 조기에 찾아낼 수 있도록 역량을 키워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8월 20일자>

사설 읽기 포인트
복잡한 원리로 구성된 금융파생상품 투자땐
정보 부족으로 소비자 '역선택' 가능성 커
정부, 적절한 규제와 자율 사이 균형 잡아야

‘시장 시스템’은 경제발전을 위한 최적의 시스템으로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완전한 시장, 이상적인 시장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완전 공정한 경쟁이 이뤄지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곳곳에서 인간의 탐욕이 깃들게 된다. 심판 기능을 하는 정부의 역할에도 한계가 있다. 부분적인 결점에도 불구하고 시장을 대체할 시스템이 없다는 사실도 자명하다.

시장 발전을 가로막는 큰 장애 가운데 하나가 ‘정보 비대칭’의 문제다. 모든 종류의 시장에서 이뤄지는 거래에서 사고파는 쌍방이 가진 정보에 차이가 있는 현상을 말한다. 상대적으로 많은 정보를 가진 쪽을 정보우위, 그 반대쪽을 정보열위에 있다고 한다. 당연히 전자가 절대적으로 유리해진다.

주식시장과 부동산시장, 외환 등 금융시장, 각종 제품시장에 모두 적용된다. 가령 증권시장에서 내부자거래 같은 것이 정보 비대칭 현상에서 비롯된 것으로, 중대한 범죄행위로 규정된다. 이는 ‘정부 실패’와 비교되는 개념인 ‘시장 실패’의 한 현상으로도 분류된다.

복잡한 파생금융 상품에서도 정보 비대칭의 문제가 보인다. 복잡한 수학적 알고리즘에 따라 설계된 파생상품의 구성 원리나 치명적인 취약점을 개인 투자자, 즉 금융소비자들이 모두 알기는 쉽지 않다. 심지어 이런 상품을 판매하는 은행 등 금융회사의 창구 직원들도 제대로 모르는 경우가 태반일 것이다. 문제가 된 금리연계형 DLS 상품을 설계하고 판매 운용하는 과정에 정보 비대칭의 한계가 있을 수 있다. 투자금 전부를 다 잃을 수 있는 금융 상품은 최고의 고위험 상품이기도 하다.

이럴 때 정보가 적은 투자자가 하는 불리한 선택을 역선택이라고 한다. 투자자들 쪽이 가질 수 있는 큰 문제로 도덕적 해이 가능성도 있다. 위험성을 알면서도 “잘못되면 (거대한) 판매 은행이 어떻게 해주겠지”라는 식의 심리다. 고수익의 기대 열매는 스스로 챙기고 위험은 의도적으로 회피하는 것이다. 이는 ‘자기책임의 원칙’과도 어긋난다. 금융이든 무엇이든 투자자 스스로가 한 판단에 대해서는 본인이 책임지는 것은 현대 경제에서 가장 기본적인 원리다. 하지만 이 또한 ‘떼법’ 때문에 무시되기도 하는 것이 한국적 전통이다. 정치가 개입하고, 국가가 일방적으로 소비자 편을 드는 일이 잦기 때문이다. 표를 의식한 포퓰리즘의 하나일 것이다. 균형점이 필요하다.

또 하나의 쟁점은 “이렇게 위험한 상품이라면 금융감독 당국이 미리 점검을 하고 필요하면 사전 규제도 했어야 한다”는 논리다. 일이 터지면 정부더러 왜 예방 못했느냐는 요구나 비난도 한국적 현상이다. 하지만 그렇게 건건히 사전에 정부나 감독당국이 다 챙기면서 심사를 하고 심지어 허가까지 하라는 것도 위험한 주장이다. 그게 바로 규제이기 때문이다. 사전 규제는 가급적 줄이면서 업계 자율에 맡기는 것이 시장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서도 바람직하다. 세계적 대세이기도 하다. 통상 규제가 많은 사회주의 체제의 중국 같은 곳에서도 사전 규제는 없애고 문제가 생기면 뒤따라가면서 해결하는 사후 규제, ‘네거티브 규제’에 나서고 있다. 불완전 판매에 대한 책임은 규명해야겠지만 생각해볼 게 많다.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