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경주시 성동동의 푸드앤디자인협동조합(대표 이원찬)은 지난해 매출 23억원, 종업원 51명의 중견 사회적 경제 기업으로 성장했다. 2013년 6월 직원 3명으로 출발해 같은 해 마을기업과 사회적 기업으로 지정된 뒤 5년 만이다.
이 회사는 정부의 사회적 기업 지원 기간이 끝났지만 고용을 꾸준히 늘리면서 경북의 대표적인 사회적 경제 기업으로 발전했다. 성장 비결은 농민과 마을기업이 생산한 농산물과 가공식품을 모두 활용할 수 있는 위탁급식, 도시락, 한우식당 등 플랫폼 사업을 확대해 나간 데 있다. 올해 매출은 지난해의 두 배인 46억원을 기대하고 있다.
경북에서는 마을기업, 사회적 기업 등 사회적 경제 기업들이 우리 농축산물 소비를 늘리는 한편 청년, 여성, 취약계층의 일자리를 창출하며 소멸 위기 농촌과 마을을 살리는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경북 안동의 사회적 기업인 위즈(대표 이홍실)는 특수원단 제조 기술을 활용한 명품 양산 시장을 개척해 지난해 직원 3명이 7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안동을 방문한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과 선덕여왕을 주제로 한 여왕의 양산, 퇴계 이황의 스토리를 담은 퇴계연가 등 고급 제품은 백화점에서 10만~20만원 고가인데도 많이 팔렸다. 프린트한 원단을 쓰지 않고 마이크로 원사를 2700번 꼬아 만든 웨이브엠보싱 원단이나 자카르 직조로 표현한 독특한 디자인의 고급 양산 시장을 노린 것이 주효했다.
경상북도와 사회적 기업 지원기관인 지역과소셜비즈에 따르면 경북의 사회적 기업은 2011년 60개에서 지난해 말 267개로 늘어났다. 서울과 경기를 제외하고는 전국에서 가장 많다. 마을기업은 같은 기간 15개에서 121개로 증가했다. 사회적 기업과 마을기업에 종사하는 상근 근로자는 지난해 말 3000명을 넘어섰고, 매출은 3170억원에 달했다.
이들 기업의 양적 성장 못지않게 질적 변화도 눈에 띈다. 사회적 기업 기준으로 청년근로자는 2014년 299명(21.6%)에서 지난해 1151명(40.6%)으로 증가했다. 청년 대표자 비중도 2015년 13.5%(10명)에서 지난해 19.2%(40명)로 높아졌다. 또 전체 종사자 가운데 57%가 여성이고 대표자 중 여성 비중이 27.8%다. 김상희 경상북도 사회적경제과장은 “인구 고령화로 소멸 위기에 놓인 중소도시와 농촌에 사회적 경제 기업이 새로운 활력이 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마을기업과 사회적 기업의 운영 방식은 수익 위주인 일반 기업과 뚜렷하게 구별된다. 푸드앤디자인협동조합의 한우프라자는 이 회사가 추진 중인 소셜프랜차이즈 1호점이다. 이 소셜프랜차이즈의 최대 원칙은 우리 농축산물 이용이다. 이원찬 대표는 “요즘 요식업 프랜차이즈는 자본력을 바탕으로 자영업자 시장을 잠식하고 있지만 가장 큰 문제는 가격 경쟁력을 위해 대부분 수입 농축산물에 의존하고 있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이 대표는 “외국산 사용이 무차별적으로 늘어나면 우리 농어촌의 위기가 가속화할 수밖에 없다”며 “소셜프랜차이즈 확대가 절실한 이유”라고 강조했다. 푸드앤디자인협동조합의 또 다른 차별점은 종업원 우대 정책이다. 근무하는 직원 60명 가운데 아르바이트는 없고 모두 4대 보험이 적용되는 정규직이다.
2011년부터 본격화한 마을기업은 커뮤니티 비즈니스라는 새로운 방식으로 소멸 위기의 마을 공동체에 새로운 먹거리를 창출하고 건전한 공동체 유지라는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고 있다.
우리나라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소멸 위기 1위는 경북 의성군이다. 의성군 안계면 양곡리가 고향인 김동윤 태양마을 대표는 10년 전 귀향해 마을기업을 운영해온 마을기업 1세대다. 김 대표는 고향에 돌아와 한옥을 짓고 고향마을의 우수한 자연환경을 활용해 생태체험, 전통한옥 숙박, 제철 농산물 직거래 등을 하고 있다. 고향 농민들과 함께 생태관광과 한옥 숙박, 농산물 직거래 등 농촌관광의 새로운 플랫폼을 완성했다. 김 대표는 “삭막한 도시에서 벗어나 며칠쯤 빛과 소음이 없는 곳에서 자연과 대화하며 자신을 되돌아보는 체험과 생태관광이 부상할 것”이라며 “청년들이 유입돼 사업을 이어갔으면 한다”고 희망했다.
마을기업은 농촌과 도시 간 건전한 공동체 문화 형성에도 기여하고 있다. 이곳을 다녀간 도시민들은 김 대표가 1년에 한두 번 여는 팜파티에 참가한다. 김 대표는 “처음에는 200만원을 들여 파티를 준비했지만 이제는 모두 떡과 고기 등을 준비해오고 동네 주민들은 직접 담은 막걸리를 내온다”며 “도시민들은 돌아갈 때 안계의 청정한 고추와 마늘 과일 등 농산물을 듬뿍 사간다”고 말했다.
의성군에 귀향·귀촌 인구가 늘고 농민들도 쌀 이외에 복숭아 자두 고추 마늘 등 작목을 다양화하면서 안계면은 활력을 얻고 있다. 의성군이 소멸 위기 1위 지역이지만 안계농협의 금융거래 규모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 안계농협의 수신은 2015년 1268억원에서 지난 6월 말 기준 1571억원으로, 여신은 같은 기간 771억원에서 997억원으로 크게 늘었다.
제2대 경북마을기업협의회장을 지낸 김 대표는 “연세 든 농민들은 갈수록 줄 수밖에 없어 귀촌·귀향하는 청년과 은퇴자들이 농촌의 미래와 변화를 주도할 것”이라며 “농가 수익이 얼마나 늘었느냐는 접근도 중요하지만 청정한 자연과 푸근하고 인간적인 정서를 바탕으로 한 농촌의 장점을 얼마나 잘 살리느냐가 마을기업 육성의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김 과장은 “경북 마을기업들이 아직 초기여서 경제적으로 독립하지는 못했지만 청년, 여성, 취약계층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독특한 네트워크를 확대하며 지방 마을을 살리는 새로운 대안 모델로 서서히 자리를 잡고 있다”고 평가했다.
대구=오경묵 기자 okmoo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