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백화점은 지난 3월 하순부터 4월 중순까지 서울 소공동 본점에 명품 브랜드 벨루티 팝업 스토어(임시 매장)를 냈다. 장소는 사람이 많이 다니는 1층 현관 바로 앞이었다. 벨루티는 프랑스 LVMH의 브랜드로 남성 구두가 유명하다. 3주간 약 1억원어치를 팔았다. 상품을 몇 개 가져다 놓지도 않고 브랜드 홍보 위주로 행사를 치른 것 치고는 많은 매출이었다. 벨루티는 임시 매장에서 좋은 성과를 올리자 롯데백화점 정식 입점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명품 전용 팝업 스토어 속속 생겨
백화점들이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공간을 해외 명품 브랜드에 내주고 있다. 주로 팝업스토어 형태다. 백화점 매출에서 명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급속히 올라가자 점포 내 ‘핫플’에 럭셔리 브랜드를 유치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명품 브랜드는 고정비 부담없이 브랜드를 알릴 기회로 삼고 있다.
롯데백화점은 아예 상설 팝업 스토어를 열기로 했다. 명칭은 ‘더웨이브’다. 위치는 지하철 2호선 을지로역과 바로 이어지는 곳이다.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공간이다. 과거 이곳에는 세일 등 홍보를 하는 조형물을 주로 세워 놓았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명품 브랜드가 팝업 스토어를 열어 달라는 요청이 많아 기존 1층 팝업존만으로는 감당하기 힘들었다”며 “해외 명품 백화점 상설 팝업 매장이 지하에 생긴 것은 국내에선 처음”이라고 말했다.
이곳에 첫 번째 팝업을 내는 브랜드는 이탈리아 펜디. 1997년 처음 나와 큰 인기를 끈 ‘바게트백’ 등을 10월 말까지 선보인다. 서울 강북 상권에선 처음으로 펜디의 남성 제품도 판매한다.
갤러리아백화점도 이달 중순 명품 전용 팝업 스토어를 열었다. 서울 압구정동 갤러리아명품관 이스트 1층 정문 바로 앞에 기존 시계, 보석 매장 중 일부를 빼고 공간을 확보했다. 프랑스 명품 디올이 지난 15일부터 이곳에서 가을·겨울 신상품을 선보이고 있다.
신세계백화점 강남점도 ‘더스테이지’란 이름의 팝업 스토어를 운영 중이다. 루이비통 보테가베네타 페라가모 등이 이곳에서 전시회 같은 매장을 꾸몄다. 지난 2월 샤넬은 프랑스 본사 캄봉 거리의 옛 풍경을 재현했고, 디올은 ‘만화경에 비친 꽃’이란 콘셉트의 이색 매장을 열었다.
현대백화점은 판교점 1층 열린 광장을 주로 해외 명품 팝업 매장으로 운영한다. 규모가 310㎡(약 94평)로 국내 백화점 팝업 매장 중 가장 크다. 현재는 루이비통이 여행가방 등을 테마로 한 ‘하드사이드 러기지 팝업’을 열고 있다.
루이비통이 팝업 흐름 주도
명품 팝업 매장은 명품 브랜드의 ‘수요’와 백화점의 ‘필요’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3~4년 전만 해도 정식 매장을 놔두고 럭셔리 브랜드가 ‘길거리 매장’, 그것도 2~3주만 잠깐 여는 것은 ‘격이 떨어진다’는 인식이 강했다. 백화점들도 팝업 매장을 중소기업 상품 전시·판매 용도로 주로 활용했다.
LVMH그룹의 대표 브랜드 루이비통이 이 상식을 깼다. 루이비통은 매장 앞 통로에선 신상품을 내걸고 매장 안에서도 틈틈이 행사할 수 있는 공간을 뒀다. ‘소비자가 방문할 때마다 공간과 상품이 뻔하면 외면받는다’고 판단했다. 최근 이것도 부족하다며 별도의 행사 공간을 백화점에 요구하기 시작했다. 트렁크가 새로 나오면 ‘트렁크 행사 공간이 필요하다’는 식이었다.
루이비통의 움직임은 다른 브랜드를 자극했다. 샤넬 구찌 등도 비슷한 방식의 팝업 스토어 행사를 했다. 그러자 명품에 큰 관심이 없을 것 같았던 20~30대 젊은 소비자가 찾아오기 시작했다.
백화점들도 명품의 이런 움직임을 반기고 있다. 명품 이외에는 백화점에서 매출이 느는 상품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백화점은 점점 많은 공간을 명품에 내주고 매출도 명품에 기대는 구조가 됐다. 지난 6월 국내 백화점의 매출 증가율은 전년 동월 대비 23.6%에 달했다. 해외 명품 매출 비중은 역대 최대인 23.3%까지 상승했다.
안재광 기자 ahn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