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기초소재 신뢰성 평가제 도입해야

입력 2019-08-21 17:27
수정 2019-08-22 00:15
기술집약도와 부가가치가 높은 제품일수록 시장 진입이 어려운 게 사실이다. 현장 책임자들이 신제품 사용으로 인해 사고가 났을 경우 발생하는 막대한 비용과 책임 부담 때문에 사용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어서다. 중소기업이 국산화에 필요한 기술을 개발했어도 수요처를 찾지 못해 개발비용을 회수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할 수 있는 것이다. 전문인력 확보와 품질인증도 어려워 국산화를 회피하는 결과가 초래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신뢰성 평가를 위한 지역 및 산업 거점을 만들 필요가 있다.

정부는 소재 부품 장비 분야의 100개 전략적 핵심 품목을 선정해 5년 내 공급 안정을 이루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과학기술만큼은 단기적 효과에 연연할 일이 아니다. 인력의 전문성을 인정하면서 산업체에 필요한 시설장비를 플랫폼 개념으로 구축해 기업의 다양한 수요에 대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특히 4차 산업혁명의 급속한 발전을 위해서는 부품·소재뿐만 아니라 데이터의 신뢰성이나 나노물질, 바이오 분야, 3D프린팅 분야와 관련된 제품에서도 신뢰성 평가가 선행돼야 한다. 원자력플랜트, 항공우주산업, 국방분야도 신뢰성 평가는 상품화를 위한 최종적인 검증 과정이다.

산업 분야별로 기술기준의 제정 및 검증체계를 효율적으로 운용하기 위해 보험기능과 관련된 금융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신제품 사용으로 인해 현장에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손실을 보상하고 문제점을 보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이는 한국 산업이 추격형에서 선도형으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혁신의 촉매역할을 할 것으로 본다.

조선산업에서 선급(船級)이란 배를 건조할 때 자체 규정과 기술기준에 따라 선박의 안전과 운항에 대해 관리·감독하고, 선박의 안전운항을 보증하는 역할을 한다. 보험업자들이 1760년 창립한 영국 로이드 선급협회의 주 업무는 선박의 선급 관리다. 로이드선급이 제시하는 조선 규칙은 오늘날 세계 조선업계의 기준이 되고 있다. 안전과 품질을 보증하는 보험업자와 연계해 선급이 수행하는 품질인증 제도는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 역할은 물론 기술개발의 전초기지가 될 수 있다. 이런 제도는 소재부품의 국산화율을 높이면서 기술발전을 견인하는 기능을 하게 될 것이다. 신제품에 불량이 발생했을 경우 사고의 책임한계를 보다 명확히 해서 신기술 제품의 시장 진입을 촉진할 수도 있다.

선급협회 창립 후 약 100년 뒤인 1850년에 로이드 해상보험의 영업이 시작됐다. 사고에 따른 비용손실이 커지면 다수의 보험업자 사이에 위험을 분산시키는 방법이 사용됐다. 이처럼 중소기업이 개발한 신제품의 시장진입을 돕기 위해 신뢰성평가 사업을 플랫폼 형태로 운영하고 신뢰성 보험제도를 시행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