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합장이 책임져라"…내분 휩싸인 재건축

입력 2019-08-20 17:31
수정 2019-08-21 02:59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여파로 서울 주요 재건축 사업장이 내홍에 휩싸였다. 반포주공1단지 둔촌주공 원베일리 은마아파트 등에서 조합장 해임 여부, 사업방식 변경 등을 두고 조합원 간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 고준석 동국대 겸임교수는 “지난 12일 상한제 도입 발표를 계기로 기존 조합 집행부에 대한 반감이 폭발했다”며 “이해관계 조정에 실패하면 재건축 사업이 표류할 수 있다”고 말했다.


비대위 등 비공식 모임 잇따라

강동구 둔촌주공아파트 재건축 조합원 200~300명은 오는 24일 비공식 모임을 열고 ‘분양가 상한제 도입에 따른 사업방향 전환’을 논의한다. 총 1만2032가구가 들어설 예정인 이곳은 일반 분양 물량만 4787가구에 달해 상한제의 직격탄을 맞았다. 조합원 사이에서는 조합장과 집행부를 모두 해임하고 새 조합장을 선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를 별도로 발족해 조직적으로 대응할 태세다.

이 아파트의 한 조합원은 “재산 손실이 가구당 2억원에 달할 것이란 말이 나오는 데도 집행부는 상황의 심각성이나 향후 대책을 내놓지 않고 일반 분양을 밀어붙이려고 한다”며 “상황을 이 지경까지 끌고 온 조합장을 해임하고 해결 방안이 나올 때까지 분양을 미뤄야 한다”고 주장했다.

갈등은 관리처분 인가를 받은 뒤 분양을 준비하고 있던 거의 대부분 사업장에서 공통으로 나타나고 있다. 동작구 흑석3구역 재개발 조합원들은 지난 11일 총회에서 기존 조합장을 해임했다. 지지부진했던 사업 속도에 대한 책임을 묻고 분양가 상한제 시행 전 일반 분양을 끝낼 수 있는 추진력 있는 조합장을 선출해야 한다는 데 의견이 모였다.

서초구 반포주공1단지(1·2·4주구)와 원베일리(한신3차·경남아파트 재건축)의 분위기도 심상치 않다. 사업 규모가 10조원에 달하는 반포주공1단지조합은 관리처분계획 무효확인 소송에서 지난 16일 패소했다. 그동안 시공사 선정, 주택형배정, 이주시기 등을 놓고 조합과 각을 세웠던 비대위의 목소리가 힘을 얻으면서 갈등이 새 국면을 맞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비대위는 10월 이주에 반대하고 있다. 이주를 해버리면 꼼짝없이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받을 수밖에 없어서다.

건축심의 지연으로 착공 시기가 미뤄진 원베일리는 조합장이 지난 5월 말 자진 사퇴했다. 이미 이주를 마친 이 단지는 착공 지연에 따른 금융비용만 500억원을 더 내게 됐다.

더 복잡해진 이해관계

향후 추진 방향에 대한 의견도 분분하다. 기존 조합은 분양가 상한제가 시행되기 전에 밀어내기 분양을 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반면 조합원 사이에서는 규제에 따른 조합원 손실이 지나치게 큰 만큼 분양을 서두르지 말고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이 많다.

둔촌주공은 설계변경을 통해 ‘1+1 분양’(신축 두 가구를 배정받는 방식)을 도입하거나 대형 주택형을 늘리자는 의견이 나온다. 비선호층을 일반 분양으로 돌리고 조합원들이 선호하는 층과 향을 모두 받게 해 일반 분양 비중을 줄이고 조합원 이익은 늘리자는 것이다. 반포주공1단지와 반포 한신4차, 방배13구역 등 당장 분양 시기가 도래하지 않은 사업장은 설계 변경 등의 궤도 수정 가능성이 거론된다.

초기단계인 재건축 사업장도 동요하기는 마찬가지다. 16년째 추진위원회 단계에 머물고 있는 대치동 은마아파트에선 1 대 1 재건축이 유력한 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가구 수 증가가 거의 없는 재건축사업 방식으로 일반 분양 수익이 거의 없어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와 분양가 상한제 영향이 적다.

재건축조합 갈등은 앞으로 더 늘어날 것으로 정비업계는 보고 있다. 정부의 규제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잇따르면서 조합원 간 이해관계와 이견이 더 분분해질 가능성이 높아서다. 한 강남 재건축조합장은 “조합원들의 주장을 모두 조정할 수는 없는 게 현실”이라며 “화풀이 할 수 있는 대상이 조합장뿐”이라고 토로했다.

이유정/전형진 기자 y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