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간 단계부터 영문 번역 작업을 해 한영 대역본으로 만든 신작 시집 두 권이 나왔다. 김정환 시인의 <자수견본집>(아시아)과 정일근 시인의 <저녁의 고래>(아시아)다. 그동안 이미 발표된 시들이나 시집을 영어로 번역해 출간한 적은 있었지만 신작 시들을 한·영 대역 시집으로 내놓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두 시집에는 각각 신작 시 20편과 함께 자신의 시 세계에 대해 시인들이 직접 풀어낸 에세이, 평론가 해설이 실려 있다. 한국어 시와 영문 번역본을 나란히 실어 독자들이 시인의 생각과 문학세계를 느낄 수 있도록 했다.
2017년 <내 몸에 내려앉은 지명>으로 만해문학상을 수상한 김 시인의 <자수 견본집>은 끊어지고 이어지기를 반복하는 언어들과 이미지를 담아낸 시들을 모았다. 책에 실린 영문 번역본은 시인이자 번역가인 그가 자신의 시적 의도를 잘 살리도록 직접 번역했다. 20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영어를 내 시로 체험해 보며 전에 없던 표현 영역을 많이 찾아냈다는 점에서 보람있는 작업이었다”고 설명했다.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린 시 ‘바다가 보이는 교실’로 잘 알려진 정일근 시인의 <저녁의 고래>는 시대와 권력으로부터 핍박받는 자에 대한 동병상련과 연민으로 시작된 서정성을 표현했다. 그 서정성은 생명, 생태, 평화의 소중함과 가치를 일깨워준다. 표제작인 ‘저녁의 고래’는 이런 가치를 담은 시다. 인간과 고래라는 종의 구분을 없애고 모두 생명과 삶의 소중함을 지닌 존재로 표현했다. 정 시인은 “고래는 생명이며 모성이며, 문화”라면서 “시인으로서의 고래에 가장 가까이 접근한 것이 아닌가 하는 자부심이 있는 시”라고 설명했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