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민의 지금 유럽은] 아베뿐 아니라 文 대통령까지 이례적 비난한 FT

입력 2019-08-14 08:22
수정 2019-08-22 11:44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FT)가 한·일 무역갈등과 관련해 아베 신조 일본 총리뿐 아니라 문재인 대통령까지 이례적으로 비판하는 칼럼을 게재했다. 첨예한 무역갈등으로 두 나라의 기업이 타격을 받는 반면 두 리더는 지지율이 반등하는 등 유일한 수혜자라고 지적해 논란이 적지 않을 전망이다.

FT는 지난 13일(현지시간) ‘한국과 일본의 무역전쟁: 죄의식’이라는 제목의 렉스(lex) 칼럼을 게재했다. 1945년부터 시작된 렉스 칼럼은 FT의 고정 논평이다. 미국과 유럽, 아시아에 있는 여러 명의 집필자가 함께 쓰는 FT의 대표 칼럼으로 손꼽힌다.

FT는 부제를 통해 한·일 무역전쟁으로 인해 두 나라 리더들의 지지율이 반등하고 있지만 이에 따른 이익은 ‘단명’(ephemeral)할 것이라고 포문을 열었다. 무역전쟁으로 인한 두 나라의 유일한 수혜자는 문 대통령과 아베 총리뿐이라는 것이 FT의 주장이다. 한·일 무역갈등이 지난달 초부터 본격화된 이후 FT는 일본 및 아베 총리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일관적으로 드러내 왔다. 일본의 행동은 자유무역의 위선을 드러내는 일이라는 지적과 함께 아베 총리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협상 방식을 베끼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FT가 문 대통령에 대해 비판한 건 한·일 무역갈등이 본격화된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FT는 칼럼을 통해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수출절차 간소화 국가)에서 제외하는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을 공포했고, 한국도 일본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는 등 맞대응에 나섰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한국의 국민연금공단이 일본 기업에 대한 투자 여부를 위협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앞서 김성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FT와의 인터뷰에서 “일본 전범기업에 대한 투자를 재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FT는 양국의 수출 비중을 고려할 때 한·일 무역갈등은 미국과 중국의 무역분쟁과 비해서도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우선 일본은 한국이 전 세계에 수출하는 반도체와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디스플레이를 만드는 데 사용하는 상당수의 재료를 공급하고 있다. 한국은 삼성전자와 하이닉스가 전 세계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시장을 절반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FT는 삼성전자와 하이닉스가 보복 차원에서 일본 기업에 대한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제품 공급을 중단하면 소니를 비롯한 일본 기업이 큰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FT는 두 나라의 무역분쟁을 계기로 문 대통령과 아베 총리의 지지율이 반등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미중 무역분쟁으로 지지율에서 이득을 본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일부 주를 중심으로 지지율이 다시 떨어지고 있다는 사례를 제시했다. 무역전쟁에선 정치인을 비롯해 어느 누구도 승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이 FT의 주장이다. FT는 “무역전쟁으로 인해 한·일 두 나라 리더가 얻는 정치적 이득은 단명할 수밖에 없다”면서도 “(두 나라의) 경제와 기업이 입는 손해는 더욱 오랫동안 지속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런던=강경민 특파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