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12일(현지시간) 재정 능력이 없는 저소득층 이민을 제한하는 새 이민 규정을 발표했다. 식료품 할인(푸드 스탬프), 주거 보조금(하우징 바우처), 저소득층 의료보험(메디케어) 등 미국의 복지 혜택을 받아야 하는 저소득·저학력층 이민을 안 받겠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내년 대선을 앞두고 ‘보수층 결집 카드’를 내놓은 것으로 분석된다.
미 국토안보부는 이날 연방관보에 생활보호 대상자가 될 가능성이 있는 외국인의 입국·체류 비자와 시민권·영주권 신청을 거부할 수 있는 ‘생활보호 대상자 불허 근거’ 규정을 공개했다. 837쪽 분량의 이 규정은 오는 10월 15일부터 시행된다.
백악관은 이날 별도 성명을 내고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시민이 아닌 외국인이 미국의 공적 혜택(복지 혜택)을 남용할 수 없다는 점을 확실히 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미국 시민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이민자는 반드시 재정적으로 자립할 수 있어야 한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전했다.
켄 쿠치넬리 이민서비스국 국장대행도 “새 규정은 외국인이 미국에 와서 공적 지원을 받거나 미국에 남아서 영주권을 받는 걸 막아줄 것”이라며 “(영주권을 받으려면) 자립할 수 있는 사람, 복지 시스템에 기대지 않을 사람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새 규정은 식료품 할인, 주거 보조금, 저소득층 의료보험 등 복지 혜택을 받은 적이 있거나 받을 가능성이 높은 저소득·저학력층의 비자·영주권 신청을 이민당국이 거부할 수 있도록 했다. 이들의 비자 기간 연장이나 영주권 신청은 물론 미국 입국 자체도 거부될 수 있다.
백악관은 “미국인의 73%가 이민자는 재정적으로 자립할 수 있어야 한다는 요건에 찬성한다”며 새 규정을 옹호했다.
BBC는 “새 규정은 식료품 할인, 주거 보조금 등 공적 보조를 1년 이상 받은 이민자를 겨냥하고 있다”며 “이들이 미래에도 공적 보조에 계속 의존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되면 (비자, 영주권) 신청이 거부될 수 있다”고 전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한 가지 이상의 복지 혜택을 ‘3년간 12개월 이상 받았거나 받을 가능성이 있는 신청자’가 핵심 타깃”이라고 보도했다.
AP통신은 “연평균 54만4000명이 (미국에서) 영주권을 신청하는데 38만2000명이 (생활보호 대상) 심사 범주에 든다”며 파장이 클 것으로 예상했다. 이민 관련 단체인 ‘제한없는 이민’의 더그 랜드 공동 설립자는 WSJ에 “(새 규정에 따르면) 국토안보부는 결혼 영주권 신청자의 절반 이상을 거부할 수 있다”며 “매년 20만 쌍가량이 함께 미국을 떠나거나 무기한 떨어져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당 주지사가 이끄는 뉴욕주와 캘리포니아주는 곧바로 새 이민 규정 저지를 위한 소송을 예고하며 반발했다. 레티샤 제임스 뉴욕주 검찰총장 겸 법무장관은 이날 성명을 내고 “새 규정은 자신과 가족을 위해 더 나은 삶을 만들기 위해 싸우는 사람들에게 등을 돌리는 또 하나의 사례”라며 “소송을 내겠다”고 밝혔다.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주지사도 주 법무장관과 함께 낸 성명에서 “이민자 가족과 유색인종 공동체의 건강과 복지를 타깃으로 하는 무모한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워싱턴=주용석 특파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