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늪 속의 여우’에서 영국 출신 아메리카 대륙 정착민들로 구성된 독립군은 영국 정부와 한바탕 싸움을 벌입니다. 의협심이 강하다지만 영국군 정예부대를 이길 수는 없었습니다. 주인공 마틴은 과거 전쟁 영웅으로 불렸으나 나이가 들어서는 조용히 가정을 지키고 싶은 아버지가 돼 있었습니다. 그런데 영국군 장교의 총에 아들을 잃고 난 뒤 그는 복수심에 불타 민병대를 조직해 영국군과 싸웁니다.
당시 영국군은 물론 독립군도 전통적 방식으로 전투를 하고 있었습니다. 북소리에 맞춰 줄지어 선 부대가 상대를 향해 걸어가면서 총을 쏘는 방식이지요. 수적으로 열세에 있고 규율도 부실한 독립군은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영국군에게 밀리기 일쑤였지요. 마틴은 잠복과 기습을 통해 영국군을 교란하는 게릴라전으로 작전을 바꿉니다. 그 결과 압도적인 규모와 장비를 지닌 영국군을 이기기 시작합니다.
‘늪 속의 여우’는 동일한 별명을 가졌던 미국 독립군 프란시스 매리언 장군의 실화에 기초한 영화입니다. 영화를 보면 다보스 포럼에서 4차 산업혁명이라는 개념을 소개했던 클라우스 슈바프 회장의 일갈이 떠오릅니다. “새로운 세상에서는 큰 물고기가 작은 물고기를 잡아먹는 것이 아니라 빠른 물고기가 느린 물고기를 잡아먹는다.”
21세기에는 기술의 기하급수적 발전과 국경 없는 세계화로 기업 간 경쟁이 극에 달하고 있습니다. 경쟁이 치열해진 만큼 고객 취향이 변하고, 그에 따른 상품 변화도 수시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기업들은 자주 전략을 바꾸고 실행력을 강화해 생존력을 키우려고 노력하지요.
○큰 물고기보다 빠른 물고기가 돼라
기업이 마틴의 민병대처럼 민첩하게 작전을 수정하고 실행력을 높이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20세기 대표 기업 제너럴일렉트릭(GE) 사례에서 힌트를 찾아보겠습니다. GE는 잭 웰치 회장이 경영하는 동안 경이적인 성과를 냈고 다양한 경영기법도 선보였습니다. SMART 목표설정법, 바이탤러티 커브, 세션C가 대표적인 예지요. SMART 목표설정법이란, 구체적이고 측정이 가능해야 하며 기한이 분명하게 업무 목표를 세워야 한다는 방법론을 말합니다. 바이탤러티 커브는 직원들의 상대비교 방식으로 구분하는 성과평가 기법을 의미합니다. A 대 B 대 C 세 개 등급의 비율은 20 대 70 대 10입니다. 그리고 GE는 C등급 직원을 압박해서 성과를 개선하도록 강제합니다. 세션C 는 장기 전략이나 사업계획을 세우는 세션 A, B와 달리 온전히 인재를 평가하고 발굴에만 집중하는 경영진 회의를 의미합니다. 웰치가 경영하던 1981년부터 2001년까지 20년간 GE그룹의 매출은 5배, 이익은 28배 성장했습니다. 이 때문에 GE의 경영기법은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갔습니다.
하지만 GE는 이제 앞서 이야기한 경영기법들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21세기 속도전에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겠지요. 웰치의 후임인 제프리 이멜트는 전통 제조기업 GE를 정보기술(IT) 플랫폼 기업으로 변화시키려 노력했습니다. 예를 들어, GE 계열의 비행기 엔진 제조기업은 보잉, 에어버스 등 항공기 제작사에 GE 엔진을 빌려주는 렌털사업을 시작했습니다. GE는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같은 첨단 기술을 활용해 고객을 장기간 묶어두는 사업 전략을 취한 것입니다.
그런데 GE처럼 사업분야만 바꾸면 변화에 적응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변화 주기가 빨라지고 진폭이 커진 만큼 새로운 성과관리 기법이 필요합니다. 1년 단위로 목표를 설정하고 평가하는 방식으로는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실리콘밸리에서는 3개월 단위로 목표를 설정하고 성과를 평가하는 OKR(Objective Key Results) 방식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인텔에서 태동해 구글에 이식되고 이후 실리콘 밸리 전체로 확산된 성과관리 기법입니다. 구글 구성원들은 3개월마다 팀 단위, 개인 단위로 3개의 목표와 3개의 핵심결과를 정합니다. OKR에는 이른바 ‘3-3-3 원칙’ 외에도 네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실리콘밸리에선 3개월 단위 목표 설정
첫 번째 특징은 투명성입니다. 분기 단위로 만들어진 OKR은 사내에 공개돼 누구라도 서로의 OKR을 볼 수 있습니다. 그중에는 상대방의 OKR에 피드백을 주는 사람도 있겠지요. 구글은 이런 피드백을 장려합니다. 구글은 이런 상호 피드백이 건강한 긴장감을 조성해 조직을 한 방향으로 정렬한다고 믿습니다.
두 번째 특징은 잦은 점검입니다. 목표가 있더라도 구성원들이 이를 잊고 지내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구글은 관리자들에게 주 단위, 월 단위로 OKR 진척 상황을 확인하라고 권합니다. 구성원들은 회의 시간에 자신의 OKR 진척 상황을 나누고 조언을 구하기도 합니다.
OKR의 세 번째 특징은 도전성입니다. OKR을 제대로 운영하는 기업에서는 여러 목표의 달성도가 70% 안팎에 그칩니다. 일을 못해서가 아니라 목표를 워낙 높게 잡았기 때문이지요. 구글에서는 OKR의 달성도가 100%에 가까울 경우, 목표 설정에 소홀했다는 피드백을 받기 쉽습니다. 많은 조직은 왜 예상 달성도가 70% 내외인 높은 목표를 자발적으로 세우지 않을까요. 보상이 목표 달성도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낮은 목표를 초과달성할 경우 보너스를 받을 수 있는데 누가 나서서 높은 수준의 목표를 정하겠습니까.
여기서 네 번째 특징이 등장합니다. OKR의 네 번째 특징은 보상제도 분리입니다. 구글 OKR에서 상당수 목표의 달성도가 70%라는 말은 직원 보상이 OKR과 분리돼 있다는 걸 의미합니다. 목표에 미달해도 보상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으니 구성원들이 도전적인 목표에 동의하는 거지요.
OKR을 구글에 이식한 존 도어는 구글의 개인 OKR 결과가 보상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30% 정도라고 말합니다. 나머지 30%는 동료 평가에 의존하고, 나머지는 관리자의 종합적인 평가 결과에 따른다고 합니다. 실리콘밸리 기업 상당수가 맥그리거의 Y이론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일을 통해 성장과 성취감을 추구하는 존재이니 별도의 관여나 간섭을 하지 않아도 열심히 일할 것이라는 믿음 말입니다. 사람들은 일상생활이 가능한 수준의 보상이 보장되면 그때부터 도전을 시작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수년간 컨설팅을 해온 필자도 마지막 특징만큼은 쉽게 동의하지 못합니다. 그건 실리콘밸리의 독특한 문화가 한몫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실리콘밸리 신화를 만든 사람 중 상당수가 자신의 꿈을 찾아 움직입니다. 이들은 당초 성장 지향, 성취 지향 마인드를 장착했습니다. 회사도 그런 사람을 모아서 세웠습니다. 한국 기업은 대부분 학교 성적이 우수한 지원자들 중에서 직원을 채용하는 관행이 있습니다. 수동적인 사람으로 조직을 채울 가능성이 크지요. OKR이 우리 상황에 딱 맞는 완벽한 성과관리법은 아닙니다. 미국 기업이라고 해서 모두 OKR을 하는 것도 아니고요.
모든 변화가 빠르게 일어나는 21세기 경영환경에 맞춰 OKR의 장점만을 취하는 게 현명한 선택이라고 봅니다.
김용성 < 피플앤비즈니스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