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은행 등 채권단이 이르면 오는 25일 아시아나항공 매각입찰 공고를 낼 계획이다. 매각 일정이 다가오면서 물밑 인수전도 후끈 달아오르는 분위기다. 매각 발표 초기에는 소극적이던 SK그룹 등 대기업들이 아시아나항공 인수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15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SK그룹이 아시아나항공 인수전에 뛰어들 것으로 알려졌다. 외국의 한 투자청과 만나 공동 인수 방안을 협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 관계자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 4월 서울에서 카타르투자청 관계자들과 만나 아시아나항공 공동 인수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SK그룹 관계자는 “최 회장이 카타르 정부를 통해 카타르투자청 관계자를 만난 사실이 있지만 아시아나항공 인수 문제는 거론되지 않은 것으로 들었다”고 말했다.
카타르투자청은 카타르 정부 소유로 2017년 기준 3350억달러(약 390조원)의 기금을 운용하고 있다. 카타르 정부는 지난해 운송량 기준 세계 4위 항공사인 카타르항공도 갖고 있다. 카타르항공은 아시아나항공과 마일리지를 적립·교환하는 등 업무 제휴 관계다.
SK와 함께 잠재적인 인수 후보군으로 거론되는 롯데 한화 GS 등 다른 그룹들도 본격적으로 움직일지 시장이 주목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여러 대기업이 아시아나항공 인수제안서를 작성 중인 것으로 안다”며 “아시아나항공 3대 주주인 금호석유화학(지분 11.12%)에도 많은 기업이 공동 인수 제안을 한 상태”라고 했다.
SK·한화·GS…"아시아나 관심 없다"던 기업들, 탐색전 시작됐다
금호산업이 아시아나항공을 팔겠다고 발표한 지난 4월 중순 이후 SK그룹 등 국내 대기업들은 대부분 “관심이 없다”고 손사래를 쳤다. 지금까지 공개적으로 인수 희망 의사를 밝힌 곳은 애경그룹뿐이다. 하지만 잠재적인 인수 후보군에 오른 기업들 대부분이 태스크포스(TF)를 꾸리거나 내부 기획팀을 통해 물밑에서 인수 가능성을 저울질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르면 오는 25일 매각입찰공고가 나면 인수전이 후끈 달아오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점점 달아오르는 인수 경쟁
15일 금융감독 당국 등에 따르면 금호산업은 25~26일께 매각주관사 크레디트스위스를 통해 공고를 내고 아시아나항공 매각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4월 매각 발표 이후 지금까지는 한영회계법인을 중심으로 매각을 위한 실사를 했다. 매각 측의 실사지만 산업은행 등 채권단과 금융감독 당국이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에 통상적인 실사보다 훨씬 꼼꼼하게 진행됐다는 후문이다. 당초 시장에서는 숨겨진 부실이 드러나지 않을까 우려하는 시각이 컸지만, 매각 절차에 영향을 줄 정도의 큰 문제는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분위기는 슬슬 달아오르고 있다. 한때 시장에서는 유찰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매각 공고 시점이 다가올수록 인수 희망기업이 늘어나는 추세라는 게 업계의 얘기다. SK와 롯데, 한화, GS, 신세계, CJ그룹 등이 내부적으로 인수전 참여 여부를 한 번쯤 검토해본 것으로 알려졌다. 하림과 호반건설 등 호남에 뿌리를 둔 중견기업도 아시아나항공을 가져오면 ‘호남 대표기업’ 자리를 꿰찰 수 있다는 점에서 인수 가능성을 타진해본 것으로 전해졌다. 금융권 관계자는 “재무여력이 있는 회사치고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검토해보지 않은 곳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며 “시장에서 거론되지 않은 중견기업 중에서도 인수를 희망하는 곳이 있다”고 말했다.
아시아나항공의 3대 주주인 금호석유화학이 인수전의 ‘다크호스’가 될 가능성도 있다. 박인천 금호그룹 창업주의 손자로 금호석화 지분 10%를 보유하고 있는 박철완 금호석화 상무가 중심이 돼 해외 재무적투자자(FI)와 손잡고 인수전에 참여하려는 움직임도 감지된다. 그는 박인천 창업주의 둘째 아들인 고(故) 박정구 씨의 장남이다. 박삼구 전 회장과 박찬구 금호석화 회장의 조카다.
주가도 매력적이다. 매각 발표가 난 4월 16일엔 아시아나항공 주가가 9450원까지 치솟았지만, 현재는 6080원(7월 15일 종가)으로 내려왔다. 시가총액 1조3400억원 중 금호산업 지분의 시가는 4000억원 선이다. 구주 가치에 높은 값을 쳐줘야 하는 부담이 많이 줄었다.
자금력·시너지는 SK가 유리
공식적으로 부인하고 있지만 SK그룹이 입찰에 참가하면 인수 희망기업 중 일부는 입찰을 포기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증권업계의 관측이다. 자금조달력이나 인수 후 안정적인 운영 가능성 등에서 SK그룹처럼 높은 점수를 받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가격을 높게 써내 경쟁할 수도 있지만, 아시아나항공의 재무상황 등을 감안할 때 자칫하면 ‘승자의 저주’에 빠질 위험성도 있다.
아시아나항공은 최근 몇 년간 상대적으로 만기가 짧은 자산담보부증권(ABS)으로 자금을 조달해왔다. 항공권 매출채권을 유동화한 것이다. ABS 등으로 조달한 자금 및 금융권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금리에 차입한 돈으로 인한 이자비용 지출이 적지 않다. 신용등급이 높은 회사가 인수하면 인수자의 신용을 바탕으로 낮은 금리의 대출로 갈아타(리파이낸싱) 이자비용을 크게 아낄 수 있다.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신용등급 A+ 이상인 곳에서 인수해야 리파이낸싱 효과를 제대로 볼 수 있을 것”이라며 “그런 조건을 만족시키는 곳은 손에 꼽힌다”고 했다. SK텔레콤 관계자는 최근 “SK그룹이 아시아나항공을 사온다면 주인이 바뀐 것만으로 리스료를 1%포인트 낮출 수 있을 것”이라며 “다만 기술투자에 힘써야 할 시점에 아시아나항공을 사는 게 필요한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예비입찰 결과에 따라 9월 초·중순께 이른바 쇼트리스트가 결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쇼트리스트 기업들의 매수 실사를 거쳐 10~11월 본입찰을 한 뒤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하게 된다. 금호산업과 채권단은 12월 주식매매계약(SPA)을 맺고 경영권을 넘길 방침이다.
김재후/이상은 기자 hu@hankyung.com